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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Mar 01. 2024

책방을 뭐하러 여냐고?

책방활짝을 시작하는 이유

큰아이가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심드렁한 말투로 묻는다.

“엄마는 책방을 왜 하려고 해?”

나도 역시 단순하게 대답한다.

“책 읽는 게 좋아서 그렇지.”

“그럼, 집에서 책을 읽으면 되잖아.”

“집에서는 작가님들 초청을 못 하잖아.”

아이가 조금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작가 초청 북 토크가 내 책방을 여는 이유 전부는 아니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그냥저냥 맨숭맨숭 살고 싶지는 않았다.


목공공사 250만 원, 냉난방기 160만 원, 전기조명공사 100만 원, 탁자 20만 원을 수첩에 적어 내려가다 보니 애초에 세운 예산 한도를 넘을 것 같아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책방에서 제일 중요한 책값 계산도 하지 않았는데. 창업 초기 자본으로 수백만 원은 부족하구나!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온 순간이다. 돈을 들인 만큼 실내장식이 멋있고, 세련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실내장식 비용을 아껴보려고 내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처리한 결과, 어떤 콘셉트도 없는 어정쩡한 공간이 되었다. 비전문가인 나의 안목은 역시 아니었다. 조명 레일을 왼쪽으로 30cm만 이동하여 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싱크대 상부 장 색깔을 좀 더 짙은 색으로 골랐으면 어땠을까. 민트에 가까운 페인트 말고 카키색으로 칠할걸. 아쉬워하자면 끝이 없다. 창업 비용의 산을 넘으면 월세라는 장애물이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올 것이다. 내 인건비를 따질 틈이 없다. 그런데, 왜 책방을 하려고 하나. 책방의 콘셉트가 무엇인가.  


실내장식 콘셉트는 귀가 얇아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지라도 책방 운영의 목적은 단단해야 하지 않을까. 출산율이 낮아지고 인구 절벽 문제가 심각하지만, 있는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좋지 않은 것도 역시 심각한 문제다. 책방 근처 ○○ 초등학교 전체 인원수가 1,300여 명, □□ 중학교 전체 인원수가 1,000여 명인 큰 학교가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문화 공간이 부족하다.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교 후에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학원, 편의점, 스터디 카페, 분식점 등에 한정되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운동을 좋아하고 뛰어노는 것을 즐겨하는 아이들이라면 학교 운동장, 집 근처 체육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기질상 정적인 아이들은 그마저도 어렵다. 그냥 앉아서 쉬고, 쉬다가 멍 때리고, 멍 때리다가 책 볼 생각이 들면 끄적이거나 뒤적거릴 공간. 아이들도 뭘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 필요하다. 학교 다닐 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40대인 내가 그런 것처럼. 그냥 가도 편안한 곳, 잠깐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만났던 아이들을 장소만 다르게, 조금 더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만나고 싶어서 앞도 뒤도 안 따지고 준비 중인데. 자꾸 통장 잔고가 내 머리와 마음을 어지럽힌다. 


공사하는 책방 근처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페에 자주 가는 편이다. 카페 손님이 자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너, 자꾸 학교도 빠지고 집에만 있으면 어떡해? 친구도 안 보기 시작하면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져.” 비록 나는 다정하고 친절하며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종일 심심한 아이가 책방에 와서 만화책을 심드렁하게 넘길 때 과자 한 봉지는 내 주머니를 털어서 말없이 내어줄 수 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차선책으로 자신의 마음에도 껄끄러울 만한 나쁜 곳에만 가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해 줄 수 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부유하게 살다 가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이미 그건 그럴 수 없기도 하니까).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보다 일과를 마무리하며 활짝 웃을 수 있는 일과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좋겠다. 나와 당신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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