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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아들, 딸이 책방을 이용하는 법

by 나뭇잎


책방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꿈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우리 집 삼 남매가 책에 몰입하는 기쁨을 느끼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책방에서 책을 엉덩이가 아플 때까지 읽다가,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어서 일어나기 싫지만 어두워지니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야만 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역시, 상상이 현실로 구체화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눈 나빠져, 적당히 보렴.”이라는 조언을 해야만 하는 일은 생기지 않고, 책방을 운영하는 나는 자식들에게 언제 오는지 여러 번 물어봐야 한다.


아이들 셋 모두 습관, 성향이 다르니 책방과 책을 이용하는 모습도 같지 않다. 셋 중 첫째가 책방에서 하는 프로그램과 행사를 가장 긍정적으로 이용한다. 일주일에 두 번,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와 책 읽기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한다. 물론, 지정 도서를 자발적으로 꼼꼼하게 읽지는 않지만 말이다. 가령, 책은 준비했는지, 수업 가기 전 책은 다 읽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과제로 읽어야 하는 책이 재미없으면 “이 책 누가 정했어? 좀 너무했네.”라고 투덜대는 건 덤이다.


이제 5학년이 되는 둘째 딸내미는 책을 싫어한다. "나는 책 읽는 것 싫어해!"라며 대놓고 말한다. 책방에 오는 것도 마지못해 온다. 내가 책방 문을 열면서 아이와 한 약속 때문이다. 학원 한 곳을 그만두는 대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책방 오기로 정했다. 딸은 한 주에 세 번 이상 오는 법은 없다. 억지로 책방에 들러서 읽던 책을 반복하여 본다. 옆에서 지켜보면, 영혼 없이 정지상태로 TV 화면을 보는 듯한 얼굴을 하고 책을 향해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얼마 전에 자신은 판타지 소설이 좋다는 걸 보니, 취향을 찾아가는 중인가 보다. 얼마나 다행인지.


막내는 책방에 오는 걸 좋아하지는 않으나 싫다는 말도 못 한 채, 꾸역꾸역 오는 중이다. 아직은 엄마를 좋아하여, 엄마가 사랑하는 공간에 오지 않으면 엄마인 내가 슬퍼할까 봐 책방에 오는 느낌이랄까? 좋아하는 책 속 캐릭터 깜냥이, 봉봉이, 숭민이가 없으면 안 올 뻔했는데. 귀엽고 재기발랄한 주인공이 나오는 시리즈 책을 즐겨 읽는다. 집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카카오프렌즈, 흔한 남매 학습 만화를 보더니, 요즘은 해리포터 시리즈만 읽는다. 그냥 집 침대 이불에 들어가서 낄낄대며 혼자 무엇을 보든 상관하지 말아야 하나 싶다.


큰아이가 책방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뒤, 정리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뗀다. 학교에서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배웠다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이 경제력, 다른 이의 평가, 자기 계발 이런 것 중에 뭐야?”

물론 나의 대답도 아이가 제시한 것 중 가장 마지막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었지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며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내 대답을 듣지 않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엄마가 책방을 하는 걸 보니 경제력이 중요한 가치가 아닌 건 분명해. 자기 계발이나 자기만족에 우선순위를 두었나 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대책 없이 뛰어드는 내 모습이 혹여나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위해서 이것저것의 계획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게 아이에겐 어떤 영향을 줄까? 아이의 말을 곱씹어보니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세상 사람들의 잣대뿐만 아니라 자신의 줏대도 있음을 아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십 년 뒤, 아이가 멀쩡한 직장을 다니다가 ‘내 길은 이게 아닌 것 같아요.’를 외치며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나 역시 아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는 자신 없다. 또, 책 읽은 게 피와 살이 되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숫자로 환산하여 결론 낼 수 없는 것이라서. 아무리 독서가 의미 있는 활동이고, 문해력이 중요한 세상이지만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거니까.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 책방 흔들의자에서 삐거덕거리며 보낸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온통 배우고 익힌 게 내 미래를 위해 어떤 좋은 성과를 낼지 골몰하는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그림과 글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맛 본 기억이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내 아이들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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