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 지금 신청해도 될까요?”
P에게 문자를 보냈다. P와 나는 2022년 책방지기와 손님, 1살 차이 나는 언니와 동생으로 만났다. 내가 책방을 오픈한 요즘은 책방지기 선배와 후배로 자주 연락하고 있다. P도 책방을 한다. 하지만, 혼자서 책방을 운영하지 않는다. 동지가 있다. 8년 전, 영등포 문래동 아파트 상가에 3명의 엄마가 의기투합하여 그림책을 전문 책방을 열었다. 그녀들은 ‘섬처럼 외로운’ 일상을 바꾸고자 했고, 아이들이 환대받는 공간을 꿈꿨다. 그게 바로 ‘그림책방 노른자’이다.
책방지기들이 텀블벅 펀딩으로 책방 운영에 관한 책을 냈다. 푸른색 배경에 하늘에 걸린 달 같기도 하고, 찐 달걀노른자 같기도 한 노란 타원형이 그려진 표지가 환하다. 작가와의 만남, 각양각색 독서 모임, 그림책 수업, 독립 출판물 만들기의 내용이 ‘기획하는 작은 책방 이야기’라는 부제에 찰떡이다. 언젠가 책방을 열겠다는 꿈을 가진 이들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 책방 위치 선정, 책 입고하기 내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속 가능한 작은 책방을 위한 몸부림으로 출판을 선택했다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책방을 연 지 고작 7개월밖에 되지 않는 나에게 책방지기로서의 7년의 과정은 실로 대단할 수밖에 없다. 남은 내 인생을 책과 함께 보내리라는 꿈이 얼마나 큰 꿈이었는지 날마다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나에게는 7년의 세월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책에서 그녀들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고 했지만.
「꿈이란 뭐 거창한 것이겠는가. 아이들은 안전하게 인생의 독립을 해나가고 나 역시 내 인생의 오후를 책과 함께, 그리고 사람들과 그림책을 쌓아두고 와인 한 잔씩 하며 밤을 지새워보는 것 그 정도의 꿈일 것이다.」 - 노른자 책, 프롤로그에서 -
비 예보가 있었나? 책방이 있는 영등포에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진다. 641번을 타고 아파트 앞에서 내려 책방이 있는 상가까지 허둥지둥 뛰었다. 손에 들고 있는 꽃다발이 작아 보인다. 활짝 핀 꽃들로만 구성된 고급지고 멋들어진 꽃다발이 아닌 게 맘에 걸린다. 간식이라도 더 챙겨야겠다 싶어서 상가 1층 편의점에 들어갔다. 눈에 익은 책방지기들. 책방지기 P와 K가 과자를 고르고 있었다. 그녀들도 행사에 참여할 손님을 위한 준비가 부족한가 싶어서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들이 나의 등을 떠밀었다.
“뭘 사려고 왔어요? 괜찮으니까, 먼저 올라가요. 먹을 건 우리가 준비하지요.”
책방지기들의 말을 듣고 혼자서 책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왔다. 일찍 도착하여 아무도 없는 책방을 둘러보니, 그녀들의 섬세함과 다정함이 깃든 책방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PPT 화면, 축하 케이크와 와인, 손수 만든 마들렌과 샌드위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김밥과 떡. 그리고, 참여자에게 줄 그림책 선물까지. 모든 것이 그녀들의 정성이었다.
북토크을 시작했다. 현재 위치한 문래동 상가 이전의 양평동에서 책방을 열었을 당시의 사진, 책방지기의 자녀들이 꼬꼬마였을 때 함께 그림책 프로그램하던 이야기, 월세가 낮은 곳으로 얻은 까닭에 겨울에는 정말 추워 문을 열지 못했던 추억을 꺼내었다. 참여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퀴즈까지 마련하여, 진행하는 이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듣게끔 유도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케이크 컷팅과 사진 촬영. 8주년을 앞둔 책방 생일 잔칫날이자 책 출간 기념식을 한 그녀들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 모두 “천년만년 책방!”을 외치며 손뼉 쳤다. 책방이 오래 버티기 위해선 이용하는 사람의 역할이 크다. 우리는 모두 진실을 담아 더 많은 사람이 꾸준히 오가길 소망했다.
「비수기마다 찾아오는 월세 걱정과 성수기라도 가져갈 수 있는 돈이 코딱지만 할 때 새겨지는 마음의 상처 등이 쳇바퀴처럼 수시로 찾아온다. 하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다. 좋아서 하는 일은 이렇게나 다르다. 책방 일을 할 때만큼은 한 번 걱정하고 세 번 신이 난다. 좋아서 하는 일은 이 모든 걸 가능케 한다.」 - 노른자 책, p18-19중에서 -
좋아서 하는 일을 천년만년 하는 게 어렵다는 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내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니까. 앞으로 20년은 문제없이 거뜬하다고 웃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책방을 운영하는 동안, 내 안의 밝은 에너지를 모두 꺼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아무튼, 책방지기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녀와 나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