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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른이 되지 못한 이유

by 나뭇잎

나는 올해 마흔여덟이 되었다. 마흔다섯을 넘기면서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덕분에 끝자리가 일곱이었는지, 여덟으로 끝나는지 번번이 헷갈린다. 내 나이를 가장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때는 엄마가 나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할 때이다.

“내 딸이 벌써 오십이라니.”

맞아요, 엄마. 이제 나도 ‘아, 피곤하다.’를 입에 달고 사는 중년이 되었답니다. 엄마는 내 나이의 숫자가 그저 충격적이겠지만요. 이제 정말 나잇값을 할 때이다. 급이 다른 아줌마로 거듭나야만 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의 올해 목표, ‘어른 되기’로 정했다.


근데 나 언제부터가 어른일까?

그때가 이때다 불어주는 호루라기

그런 거 어디 없나 그런 게 어디 있어야

돌도 놓고 돈도 놓고 마음도 놓는데

- 김민정/ 시 ‘어른 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 중에서-


언제부터 어른인지, 어떻게 해야 어른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렵고, 어른다운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증거는 충분하다.


#1

아기 가슴에 손바닥으로 토닥토닥하면 잠들어서 천사 같은 얼굴을 하는 줄 알았는데. 첫 아이 낳고 내가 무언가 크게 잘못 알았음을 깨달았다. 나 아직 멀었구나. 주원이가 새벽에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는데 무서웠다. 거기다가 다른 집에서 시끄럽다고 잠 좀 자자고 우리 집으로 인터폰 하면 어쩌나 걱정할 정도로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조그만 주먹을 꽉 쥐고. 이게 야경증인가 검색했다. 내 뱃속에서 이렇게 예민한 아이가 나오다니. 나도 우리 엄마한테 도망가고 싶었다지.


#2

2024년 12월이 되면서 약간의 우울함이 저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난 원인을 알고 있었다. 충분히. 내가 나를 뛰어넘지 못했다. 늘 그냥 그저 그런 상태도 만족하던 그 상태에서 한 발짝도 더 넘지 못했음을 정말, 무척,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서도 그냥그냥, 책방 운영도 미진, 쓰기도 대충. 나를 넘어서지 못한 내가 싫었다.


#3

2024년, 얼굴도 떠올리기 싫은 이가 생겼다. 샤워하면서 날마다 욕을 했다. 목소리를 내어서. 어떻게 하면 복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녀가 강의하는 도서관에 민원을 넣을까 진지하게 궁리했다. 물론, 하지는 않았다. 이건 나의 선의가 아닌 귀찮음 때문이었다.


우리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지난 학교의 교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분에 나에게 이렇게 위로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후에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요. 물론 숫자상으로는 20대부터 어른이지만, 그때는 진정한 어른이 아닌었던거지.”

나에게 묶여있던 보이지 않는 끈이 떨어져 나가야 어른이 되는 건가 보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아이가 되고, 다시 천사가 되어 훨훨 날아가야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뜻인가 보다.

아빠가 없어도, 엄마가 떠나도 누군가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아도 홀로 설 수 있는 준비를 해야지. 다른 사람이 비난해도 나는 나를 비난하지 않기, 하고 싶은 일은 그냥 하기도 추가하고 싶다. 해야만 하는 일은 오랫동안 했으니까. 이제 하고 싶은 일은 누가 못한다고 흉보더라도 그냥 하기. 핑계 대지 말고. 이런 걸 ‘내 마음 단단하게 하기’로 묶을 수 있으려나. 갈수록 타인에게 꽁해지는 경우가 많고 서운한 일이 많아지는 요즘, ‘그럴 수도 있지’ 생각을 한 번쯤 더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모르는 각자의 사연과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런 생각은 아무런 필요 없다. 그 사람은 내가 아닌데 내 틀에 맞춰서 판단하지 말지어다. 써놓고 보니, 결국 나에게 하는 각오, 다른 이와의 관계에 관한 결심이다. 설령,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잘못하고, 고치고를 반복하며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노력하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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