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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줌 Jun 25. 2024

조조문(弔爪文)

'04


조조문(弔爪文)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발톱을 깎다가, 틱-툭. 스쳐가는

천년 묵은 서생원 톡 도드라진 앞니 두 쌍에

엉겁결에 겁을 집어 먹고 허겁지겁

흩어진 분신들을 장사 지낸다.

나의 주검, 나자마자 죽어버린 내 새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 어-야.

불투명 미색의 뽀오얀 너의 피부에 키스하며,

샤프하게 잘려나간 날렵한 너의 허리에 애무하며,

고기 냄새 달치근한 향그러운 너의 내음에 취하며,

아저씨의 미스로 때 이른 열차를 탄 나의 굳은살들에게 조의를 표하노라. 상향(尙饗).








*20년 만에 다시 보니


 조침문(弔針文)을 패러디한 시다.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은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제문 형태로 수필을 지었다. 지금 보아도 재미있고 재치 있는 글이다. 남편도 아이도 없이 홀로 지내던 그녀에게 바느질은 유일한 취미였다. 요즘 시대로 치면 덕질하는 최애 아이돌과도 같이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던 존재였다. 그런 애착바늘이 똑하고 부지불식간에 부러졌으니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가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2004년 어느 가을밤, 언니버서리는 발톱을 깎다가 바닥에 흩어진 부스러기들을 보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묵은 쥐가 사람의 손톱 발톱을 먹고 사람으로 둔갑했다는 무서운 전래동화 이야기다. 똑같이 생긴 분신 때문에 부모님도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무의식 속에서 고개를 든다. 아뿔싸. 그제야 사방으로 튕겨나간 발톱의 잔해들을 한 조각 한 조각 찾아 모은다. 이 귀한 발톱을 함부로 내버릴 뻔한 스스로의 생각 없음을 반성하며 부디 천 년 묵은 서생원이 오늘 밤 내 발톱을 찾지 못하길 기도하며 이 시를 지었다.


 거의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갔는데, 다시 보니 후반부에 키스니 애무니 하는 시어들이 좀 튄다. 쉼표와 마침표 같은 구두점도 너무 많다. 마지막 행에 나오는 '아저씨'는 사실 손톱깎이를 의인화한 것인데 나만 알고 저렇게 써놓았다. 대관절 무슨 아저씨인지 설명도 없다. 엉터리 시인 언니버서리의 엉뚱한 시가 이렇게 남아 있다.


 한 줄 평: 스무 살 언니버서리는 읽는 사람 생각은 1도 안 했다.

 

<조침문(弔針文)> 읽고 오기



*이 시에 대한 여러분의 감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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