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은 아이, 엄마의 선택은?
은우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첫날 다녀와서 반응은 '학교 재미없어 안 가고 싶어'였다. 처음부터 신나서 갈거라 생각진 않았어도 학교를 좋아했던 나처럼 새로운 시작을 즐길 줄 알았는데 아이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전해져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마디 불평에 엄마가 너무 동요하면 안 될 것 같아 태연하게 받았다. "에이 재미로 학교 가는 사람이 어딨어? 배우러 가는 거지. 어른들이 회사 가듯이 학생은 학교 가는 거야. 엄마도 회사 재미없지만 매일 출근하잖아! 회사보다 학교가 훨씬 재밌을 걸?"
학교를 당연하게 가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말하다 보니 어딘가 또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준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러쿵저러쿵해도 학교를 안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아이에게 입력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갖은 이슈를 몰고 다니며 시끌벅적 한 주가 지나갔다. 어떤 날은 실내화를 잃어버렸고, 또 다음 날은 태권도 띠를 흘리고 왔다. 아직 자기 물건에 대한 의식이 없어 이름표를 커다랗게 붙이고 직접 가방에 넣도록 지도했다. 은우는 새로운 학교생활이 힘들었는지 얼굴살이 다 빠져 얼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매 졌다.
매일 쏟아지는 각종 준비물과 가정통신문을 챙기느라 나도 다크서클이 두 배로 늘어났다. 등하원을 도와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피로해 보였다. 모두가 입학적응훈련이라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은 가서 두 주가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학부모 공개수업과 상담이 시작되었다. 은우네 반은 총 열일곱 명이었다. 옆으로 굴린 디귿 자 형태로 예닐곱 개의 책상이 한 줄이 되어 교실 중앙을 바라보는 배치였다. 우리 아이는 12번. 한 반에 오십몇 번까지 있던 예전과 참 달라진 풍경이었다.
이제 갓 입학한 지 보름 된 쪼꼬미들은 간신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틈만 나면 자리를 이탈하고 싶어서 작은 궁둥이들이 이리 삐쭉 저리 삐쭉거렸다.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교실 뒤에서 지켜보는데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을 맞추느라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지 않았다.
엄마가 와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하면서도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도록 손짓으로 연신 선생님을 가리키며 보라고 했다. 그러면 또 앞을 보곤 했다. 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는 여기저기서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유치원생 같기만 한 아이들이 초등학교 형님의 하루를 체험하는 원데이 클래스 현장 같았다.
수업은 '문어의 꿈' 노래를 함께 부르고 난 뒤 문어 모양 종이에 자신의 꿈을 적고 발표를 하는 순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각자 되고 싶은 직업을 적었다. 소방관, 축구선수, 의사, 선생님도 있었고, 미래의 아이돌도 두 명 있었다. 은우는 과학자라고 적었다.
다 적은 아이들은 문어의 여덟 다리를 마음에 드는 빛깔로 색칠하기 시작했다. 은우도 통통한 다리는 무지개색으로, 머리(사실 이 부분이 몸통이라던데)는 핑크색으로 칠했다. 빨판까지 야무지게 칠하고는 수줍게 대충 발표를 마치고 칠판에 붙어있던 파란색 도화지 바다에 첨벙 입수시켰다.
쉬지 않고 떠들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긴 했어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주어진 과제를 잘 수행했다. 그 모습이 엄마 눈에는 그저 기특하고 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역시 내 아들이지 하며 잠시 뿌듯해지기도 했다.
...
그런데 아니었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은우를 돌봄 교실에 데려다준 나는 다시 학부모 총회와 교육 참석을 위해 교실로 돌아왔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다른 엄마들이 나갈 때 나는 잠시 교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이 사물함도 한 번 열어보고 게시판에 붙은 아이 그림도 살펴보았다. 그때였다.
"어머님 혹시 시간 되시면 잠깐 얘기 좀 하고 가시겠어요?"
선생님의 제안에 나는 바로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우리 가정이 일반적인 보통의(?) 가정과 다르긴 하니까. 궁금하실 수 있겠지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담임 선생님은 나와 마주 보는 자리로 의자를 가져와 앉으셨다. 그리고는 약간 난감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음.. 사실 은우가 첫날 수업을 거부했어요. 책을 펴라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혼자서 색종이로 뭔가를 만드는데만 집중하더라고요. 온몸으로 공부하기 싫다고 표현하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정말 뜻밖이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아... 네...' 하면서도 잠시 머리가 정지된 것 같았다. 학교에 갓 입학해서 새로운 규칙을 익히고 새 친구들과 사귀는 것이 곧 적응이라고만 생각했다. 학교에 가서 그 공간에서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수업을 받는 것, 그 디폴트값이라 여겼던 일 자체를 거부할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저도 일단은 강요하지 않고 두었는데, 얘를 정말 어떻게 해야 될까 싶더라고요. 사실 반에서 은우가 제일 걱정이 많이 됐어요. 아이가 유치원에서는 생활 잘했을까요?"
깊어진 눈주름에서 선생님의 염려가 전해져 왔다. 나는 놀란 마음을 잠시 누르고 아이가 유치원을 잘 다녔으며 활동 참여를 거부하거나 비협조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었다고 답했다. 오히려 은우가 대답을 잘해서 수업할 맛 난다는 선생님 말씀을 들은 적도 있어서 그런 쪽으로는 전혀 걱정 안 했는데 나도 놀랐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담임 선생님은 내 대답에 반신반의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유치원에서 별문제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그럼 아직 초반이니 아이가 마음을 열길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첫 주보다는 나아지긴 했다고. 나는 은우가 이사 온 지 갓 두 달 되어 이 동네에 친구도 없고 조금 낯선 것 같다, 그래도 잘할 아이이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집에서 좀 더 신경 쓰겠노라고 선생님의 눈을 보며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예기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교실 문을 나서는데 적잖이 머리가 복잡했다. 왜 첫날부터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느냐고 혼을 내고 좀 단호하게 일러줘야 할까? 아이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니 차분히 물어보는 편이 좋을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찌하면 좋을지 판단이 되지 않은 채로 일단 아이를 보러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내려갔다.
1층 돌봄 교실에서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친구들과 보드게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잘 노는데 왜 그랬을까? 떠올려보니 입학식 다음 날 저녁 아이는 잠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 이 학교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재미도 없고 안 가고 싶어. 안 가면 안 돼?"
나는 아이의 투정을 가볍게 여겼다. 길고 긴 겨울방학 동안 실컷 집에서 티브이를 보던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으니 얼른 다시 줄여야겠다 정도로만.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가 받은 초등 입학 스트레스는 큰 것이었고, 그것을 교실에서 나름대로 삐딱하게 반항(?)의 형태로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생님과의 상담 전, 교실 뒷벽에 붙은 아이 그림을 보았을 때도 사실 가슴이 철렁했었다. 눈코입이 그려져 있는 종이에 사인펜으로 칠을 했는데, 편안하고 알록달록한 그림들 사이에 유독 은우의 그림만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눈과 얼굴이 온통 빨간색이었는데 흡사 도깨비를 그린 것 같았다. 유난히 무서운 그 빨간 얼굴 그림 아래로 야속하게도 우리 아이의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돌봄 교실에서 나를 본 아이는 '엄마' 하고 웃으며 반가운 얼굴로 나왔다. 아이가 그린 빨간 도깨비 얼굴이 오버랩되어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올라오는 걱정을 밀어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집에 가자!"
엄마가 와서 평소보다 일찍 귀가하게 된 은우는 신이 나서 집에 가는 내내 콧노래를 불렀다. 내가 아는 아이 모습이 다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얘는 외향적이니까 환경이 달라져도 당연히 잘 적응하리라 쉽게 생각하고 강요(?)까지 했던 게 미안해졌다. 이 녀석.. 힘들었구나.. 나는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을 간신히 목구멍 뒤로 삼키고 이렇게 말했다.
"은우야, 학교에 태권도에 센터에... 갑자기 여러 군데 다니느라 고생이 많네~ 잘 다녀줘서 고마워, 아들! 엄마는 그냥... 은우 믿고 기다릴 테니까 힘든 거 있음 말해도 돼. 알겠지?"
아이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 답했다.
"
네~! 근데... 아직 적응이 다는 안 됐어요."
"그랬구나.. 엄마도 아직 새 회사가 낯선데.. 우리 같이 잘해보자.. 파이팅!"
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약간 톤을 높이자, 아이도 작은 주먹을 들어보이며 화답해 주었다.
"파이팅!"
별말 안 해줬는데도 아이 표정이 살짝 밝아지는 듯했다. 묻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일을 캐묻고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나는 그냥 내 아이를 믿기로 했다. 엄마의 믿음과 응원을 가만히 알려주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은우는 은우의 속도로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엄마는 곁에서 말없이 버티고 서있으련다. 힘들고 자신 없어지는 순간이 오면 나타나서 엄마가 곁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도록 넌지시 일러줘야지.
은우야, 엄마는 너의 응원단장이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