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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하나,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떨림

by 한줌

운동을 시작했다. 종목은 필라테스. 출산 후에 잠깐 해본 뒤로 처음이다. 초반의 반항으로 불량학생이 될까 걱정했던 아이는 다행히 학교생활에 한 발 한 발 적응해가고 있다. 역시 아이들은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자라는구나 싶다. 아이의 순조로운 적응과 엄빠의 배려로 드디어 나도 자만의 운동시간을 갖게 되었다.


첫 수업날이었다. 나는 조금 일찍 가서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을 하며 낯선 공간을 스캔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를 보고 인사하는 눈이 맑고 자신감 있어 보였다. 나는 살짝 웃으며 강사 선생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선생님의 키였다. 백칠십오 센티 가까이 되어 뵈는 긴 몸이 잘생긴 나무처럼 하늘로 쭉 뻗어 있었다. 풍기는 느낌이 야리야리하지 않고 전신이 고루 탄탄해 보였다.


랜만에 해보는 그룹 레슨이라 살짝 긴장이 올라왔지만 예전부터 새로 무언가 배울 때마다 곧잘 따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끌어올려 보았다. ', 내가 보기보다 운동신경이 있는 편이지...'


강습실 한쪽 바닥에 매트를 깔고 누워 장을 보며 만히 심호흡을 내뱉 보았다. 폼롤러를 뒷목에 베고 누워 뭉친 목과 어깨를 풀었다. 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부위가 폼롤러에 지그시 눌릴 때마다 혈 자리가 자극되는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며 날숨이 새어 나왔다. 굳어 있는 몸에게 이제 운동이라는 걸 할 테니 너무 놀라 자빠지지 말라고 토닥여주는 느낌이랄까.


이제 폼롤러를 날개뼈 뒤로 내리고 그 위로 상체를 천천히 젖혀보았다. 하루 종일 앞으로만 여져 있던 가슴과 등허리가 반대로 펴지며 두두둑 소리가 났다. 아이고 시원해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행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고 내적으로만 외쳤다.


그렇게 차례로 상체에서 하체로 내려가며 굳은 몸을 풀어주고 있는데,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잡고 앉아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서로 활기차게 인사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좋지만, 조용히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시간도 귀하다. 이곳은 후자였다. 나도 조용히 거울 속 내 모습을 응시해 보았다.


거울 속에 있는 중간 키의 짧은 머리 여성은 아직 이 공간이 낯선 모양이었다. 몇 년 만에 입은 딱 달라붙는 레깅스 덕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하체의 굴곡이 어딘가 바라보기 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시선은 자신의 몸이 그리는 곡선과 직선을 연신 좇고 있었다. 평소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어색하지만 얼른 눈에 담아 지금의 자기 모습에 적응해 보려는 듯.


이윽고 대나무처럼 쭉 뻗은 강사 선생님이 수업 시작을 알렸다. 다 같이 바렐과 체어라는 기구를 이용해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두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고리를 가운데에 걸어놓고 왼손으로 페탈을 살짝 누르면서 오른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세요. 그렇죠! 하나, 둘, 셋, 넷, 다섯!"


기구 사용법도 동작도 모르는 초보 필린이는 쏟아지는 지시사항을 빠짐없이 따라가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눈으로는 흘끔흘끔 선생님과 옆사람의 자세를 보느라 바빴다. 수업의 진행을 늦추는 빌런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일념으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런데도 부족한 근력은 어쩔 수 없어서 여덟 번씩 반복하는 동작에서 처음 온 티가 팍팍 났다. 한 네댓 번째까지는 무리 없이 잘 따라 했는데, 꼭 여섯부터 팔다리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인간 사시나무가 되어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마다 선생님의 목소리도 같이 올라갔다.


"그대로 하나 더! 자세 흐트러지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어어어어!"


누가 나를 이렇게 열렬히 응원해 줄까. 선생님의 뜨거운 응원에 힘입어 나는 포기하지 않고 제 거의 춤추듯 움직이는 팔다리를 꼿꼿이 쳐들고 끝까지 자세를 유지했다.


"읕! 와~ 하셨어요. 돌아와 아기자세로 휴식하세요~"

친절한 선생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순한 아기가 되어 철퍼덕 엎어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그라게 만 등이 바삐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었다. 거칠어진 호흡과 뜨거워진 몸에서 흐르는 땀만이 감각되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철저히 현재에 존재하는 순간인가. 생각 없이 걱정 없이 계산도 없이, 나는 그 순간 매트 위에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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