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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전학 첫날,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심장 아팠던 첫 통화

by 한줌

직장 발령으로 일단 임시로 속 짐만 가지고 반이사를 감행했던 지난겨울, 그렇게 시작된 캥거루족 생활이 어느새 반년이 지나 여덟 달 넘겼다. 폭염과 장마가 겹치니 죽을 맛이었다. 서로가 원래 살던 본가라 가능했던 동거였다. 부모님도 불편을 감내하며 딸이 과도기를 잘 지나가도록 묵묵히 공간을 내어주셨다.


부모님과 좁은 집에서 복닥거리며 살아본 경험은 의외로(?) 좋았는데, 그건 바꾸어 말하면 내쪽이 받은 게 더 많다는 뜻일 게다. 음 두어 달은 그래도 열심이었다. 나름대로 레시피를 찾아보며 음식도 만들고 손 안 닿는 구석구석 청소도 했다. 하지만 석 달이 넘어가고 일이 바빠지면서부터 확실히 많은 부분을 부모님이 해주시게 되었고, 나도 차츰 거기에 적응해 갔다.


그런데도 같이 살 때는 솔직히 나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한 번씩 저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누르느라 애먹은 적도 있었다. 그 여덟 달이 지나고 다시 내가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이제 선명히 보인다. 아빠가 해주던 청소와 쓰레기 버리기가, 엄마가 해주던 설거지와 빨래가 생각보다 많고 더 자주였음이.


나와 아이가 살게 된 우리의 보금자리는 부모님 댁에서 멀지 않은 옆 동네의 구축 아파트이다. 좀 낡긴 했어도 초등학교도 가깝고 부모님도 가까우니 위치가 참 좋다. 이사를 하고, 아이의 전학 수속을 밟았다. 아이가 혹시 지난 3월 입학 초기처럼 새로운 학교를 거부하거나 다시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할까 봐 속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은우는 개학식 날에 맞추어 새로운 학교로 등교했고 첫 수업을 받았다. 그날 오후 일을 하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직장에서 일하던 나는 헐레벌떡 사무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일까?' 학교에서 오는 전화는 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한다.


"은우 어머님, 담임이에요. 오늘 은우 반 친구들하고 첫인사하고 밥도 잘 먹었습니다."


"휴, 다행이에요. 은우가 새로운 곳에 가면 처음엔 적응에 시간이 걸리기도 해서 좀 걱정했거든요..."


"오늘 하루 봤지만 원래 여기 다니던 아이 같던데요. (웃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어머니, 참 잘 키우셨어요."


잘 키우셨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그대로 묵직한 진동으로 내 심장에 전해졌다. '세상에, 이런 말을 듣는 날이 오다니.' 지난 삼 월 첫 초등 학부모 면담 때 따로 교실에 남아 들어야 했던 이야기와 너무 다른 말씀이었다. 아이가 겉돌거나 뭔가 준비물을 빠뜨렸다거나 그런 류의 통화일 줄 알고 긴장했던 내 심장은 다른 의미의 충격으로 쿵쾅거렸다.


"감사해요, 선생님. 눈물 날 것 같네요."


"제가 감사해요, 어머니. 은우같은 아이가 저희 반에 와서 제가 더 감사하답니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어요."


은우가 말을 참 예쁘게 하고 생활태도도 좋다며 선생님은 자기가 더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들어보니 우가 오기 전에 두 명의 친구가 전학을 갔고, 아이들이 우리 반에는 새로 친구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며 기다려왔던 모양이었다. 서로가 고맙고 반가운 인연이었던 셈이다.


행운이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전해지는 선생님의 음성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느낌에 더욱 감동이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고마웠다. 잦은 이사와 환경변화에 잘 적응해주고 있는 은우가 아니었다면 우리 삶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렇게 우리는 임시적 캥거루족의 삶을 끝내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고향 서울로 돌아오는데 팔 년이 걸렸다. 은우 나이만큼 타지 생활을 했고, 그중 절반은 이혼 후 싱글맘으로서였다. 시간은 걸렸어도 자력으로 서울에 직장을 잡고 이제 살 공간도 마련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고생 많았다고 잘했다고 격려해주고 싶다.


팔 년을 돌아 겨우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 같지만, 뒷걸음질은 아니다. 내 작은 세포에 불과했던 존재가 저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 초등학생이 되어 있지 않은가. 혼자 똥꼬도 못 닦아 삐쭉 엉덩이를 내밀던 녀석이 이제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을 꼭 닫을 만큼 자랐다.


그리고 나도 성장했다. 스스로의 모습과 인생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다.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었고, 내 경계는 내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같은 조직생활을 해도 주위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좀 무심해진 것인데, 그만큼 편안해지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줄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연고지로 돌아와 아이와 살게 되었다. 이 한 문장을 이루기 위해 참 많은 공을 들였고, 주위의 도움이 있었고, 운도 따랐다. 돌아보면 나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우리 엄마, 아빠, 동생 은성이의 조력이 컸다. 가족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제 여기서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은우를 잘 키워내야지. 그리고 스스로도 잘 돌보며 멋지게 살아보자. 서른셋에서 마흔 하나가 되기까지 길고도 살벌했던 나의 삼십 대여, 이제는 안녕이다. 빠이. 이제부터 만날 나의 사십 대는 정말, 정말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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