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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Apr 16. 2024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 형님의 북 콘서트

캡틴락이 MC로 참여했습니다.

2024.4.14. 일요일 1시. 서강대학교 메리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 형님의 북 콘서트에서 MC를 맡고 왔습니다.

(창밖에서는 시원한 봄비 소리가 들리고 BGM으로는 '나는 지구인이다' 앨범을 틀어놓고 있습니다. 지금은 '둘이서'가 나오네요.)


김창완 형님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형님께서 평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셔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선뜻 MC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예능감이 넘치거나 달변가는 아닙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조곤조곤 수다 떠는 것은 좋아합니다. 처음에 MC 제안을 받았을 때,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마음과, '긴장해서 북 콘서트를 망치면 어떻게 하지?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이며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이 50:50으로 순간적으로 교차했습니다. 이럴 때 저는 살짝 돈키호테처럼 들이대는 스타일입니다. '일단 저질러보고 끝나고 나서 생각하자. 뭐라도 경험치가 쌓이겠지. 분명 성장의 원동력이 될 거야. 맨날 익숙해진 것만 하고 지루하게 살수만은 없지 않은가?'라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MC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건강한 긴장감은 레몬향 나는 소독용 알코올처럼 내 안에 눅눅해진 무언가를 닦아내는 느낌입니다.


책 제목처럼 '찌그러진 동그라미 같은 북 콘서트도 동그라미 아니겠습니까?'라는 마음으로 참여하기로 했죠.


북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크라잉넛 일본 4개 도시 투어를 마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새벽 2시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습니다. 동틀녘쯤 집에 도착하고 급속 숙면으로 충전한 뒤, 리허설을 하러 콘서트장에 도착했습니다.



대기실에는 차분한 모습의 김창완 형님과 '아침창' 작가님들과 피디님들, 웅진 출판사 직원분들 등 최고의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유롭지만 머리 위에선 여러 색깔의 100호선 지하철 노선도처럼 무언가 생각들이 신속하고 정교하게 교차하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잠이 살짝 모자라서 몽롱했지만, 김창완 형님께서도 전날 전국투어 일정을 마치셨고, 북 콘서트가 끝난 후 '세바시' 방송 녹화가 있고, 다음날 또 공연 일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쁜 건 저만이 아니었더라고요. 그래도 김창완 형님께서는 굉장히 평온해 보이셨습니다.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29년 동안 무대 위에 서 봤지만 아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기보다 조금 더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힘을 '탁'하니 빼고 한순간 다 내려놓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네요. 사실 그런 제 모습이 그렇게 싫지는 않아요. 그게 그냥 저인지도 모르겠어요.


대기실에서 작가님과 원고 리딩을 하며 리허설을 했습니다. 저는 성의껏 낭독하려고 발음을 깔끔지게 씹어가면서 나름 예쁘게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발음을 정확히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의 의미를 실제로 음미하면서 읽으면 그 느낌이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낭독의 속도는 빠르거나 느리거나 상관없고 자신의 리듬대로 가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프로페셔널 작가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분 강의 덕분에 확실히 몸의 세포들이 태세 전환을 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글자만 읽지 말고 내용을 소리로 끄집어내 울리자.'라는 마음으로 낭독하니 한결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가끔씩 방송 나가거나 인터뷰를 할 때, 사람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해, 편하게 해.'라고 좋은 뜻으로 말을 건네주시는데 속으로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제일 어렵다고...'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썩은 미소를 날리곤 합니다. 아무튼 언젠간 흐를 이 시간 본격적으로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북 콘서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어두운 공연장 뒤편에서 휴대폰 불빛들로 서로를 비춰주며 미로 같은 동선을 지나 무대 바로 옆으로 이동합니다.


저는 가끔 공연 시작하기 전 고요하고 어두운 무대가 엄마의 편안한 양수에 있을 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환한 조명이 저를 뜨겁게 때려주면 '응아~'하고 세상에 나온 아기처럼 시끄럽게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곤 하죠.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냐고...'말이죠.

크라잉넛이 선물한 아침창 로고송과 더불어 북 콘서트가 시작됩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이 되는대로 그려보겠습니다.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v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 생활이란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라는 오프닝 낭독을 마치고 김창완 형님의 어쿠스틱 미니 콘서트로 오늘의 동그라미 그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오프닝 멘트를 마치고 형님 공연하는 동안 30분 정도라는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 큐카드 공부를 하려고 대기실에 잠깐 내려갔습니다. 대기실에 앉아서 큐카드를 보고 있노라니, 아니 오늘 북 콘서트 제목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인데 나는 왜 제대로 된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잘 하려는 마음 때문에 형님의 귀한 공연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소중한 지금을 놓쳐서야 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바로 일어나서 다시 무대 옆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첫 곡 연주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김창완 형님께서는 관객분들께 오늘 공연은 자신의 방 안에 초대한 것 같은 마음으로 준비했으니 편안히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형님 댁에 초대받고 한잔 술과 함께 통기타 라이브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아침 방송이 끝나고 볕이 잘 드는 하얀 방에서 한잔 술과 음악에 취해 듣는 라이브는 몽환적인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공연장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김창완 형님의 라이브를 듣고 있노라니, 그날 불러주신 '둘이서' 가사처럼 밤이 담긴 화병 속에서 공연을 보는 듯한 초현실적인 느낌이었습니다. 통기타에서 울리는 멜로디와 읊조리는 듯 노래하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 조명처럼 이글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 길어진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북 콘서트 MC를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아침창에 여러 번 나가봤지만 단 한 번도 큐시트대로 진행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북 콘서트도 역시 예상대로 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진행을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역시나 큐시트대로 진행되기보단 형님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그것 또한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대화의 시작은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냄새 같은 것'이라는 챕터로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형님의 아침 궤적 같은 이 책에 제 이름이 실려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냄새와도 같아서, 문득 누군가 떠오를 때 꼭 연락을 하지 않아도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기분이 사그라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말미에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생각났다는 글이었는데, 제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형님께서는 책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라디오 오프닝으로 몇 번 더 언급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러니 제가 북 콘서트 MC를 안 할 수가 있을까요?ㅋㅋ

그리고 라디오 DJ부터 김창완밴드 전국투어, 연기, 집필, 자전거 출근, 그리고 그림까지 그리시니 도대체 김창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가 거의 좌우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쁜 일이라고 두고두고 빨 사탕도 아니고, 슬픈 일이라 해도 그것에 인생을 저당잡혀 청승 떨 일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을 산다는 것. 몰입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항상 김창완 형님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날 '시간'이라는 곡을 연주할 땐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타고 시간으로 걸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차 막히고, 애인 기다리고, 슈퍼마켓 가서 줄 서고, 영화 관람 기다리는 게 버리는 시간이 아니에요. 진짜 버려지는 시간은 누구 미워하는 시간입니다.'

'거울 속의 나도 과거다.'라고 할 만큼 뒤돌아보지 말 것. 먼 미래도 어제만큼 멀지 않다는 걸 기억하길.

책에 나와 있고, 또 이런 말씀도 해주셨는데, 정말 뒤도 안 돌아 보셔서 자신이 쓰신 책도 안 읽어 보고 나오셨습니다.

공연 중에 "책은 여러분이 읽으세요. 전 노래할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북 콘서트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관객분들과 하하 호호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끝으로 '사라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깊은 인상으로 남습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형님과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셀카를 찍고 끝내기로 했는데, 제가 셀카를 너무 못 찍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형님과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손으로 그리며 셀카를 찍고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북 콘서트를 마쳤답니다.

저에게 형님의 북 콘서트의 MC는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많이 되는 일정이었는데, 첫 북 콘서트 MC치고는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찌그러져도 괜찮으니 우리 무조건 동그라미 그리기를 시작해요. 시작 선과 끝나는 선이 만나기만 한다면 우리는 보통 동그라미라고 부른답니다.



오늘 하루를 조금 망친다 해도 우리 찌그러져도 동그라미라고 귀엽게 우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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