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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May 19. 2024

<토요일은 작은 크리스마스 같아>

왠지 놀아야 할 것만 같은 강박.

토요일은 작은 크리스마스 같아. 왠지 놀아야 할 것만 같은 강박. 게다가 5월의 청량한 밤. 안 놀면 손해 볼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워낙 친구들도 좋아하고 풍류도 좋아하지만, 토요일 밤 흥청망청 유흥으로만 보내기가 조금 시큰둥 해졌다. 그래서 평일처럼 집안일하고 필기체 연습하고 악기 연습하고 운동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 시간이 정말 플렉스 한 듯 뿌듯하게 느껴졌다. (방금 아침 먹었는데, 글을 쓰면 왜 배가 고파질까?)

작업실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정말 달콤하다. 음악 생활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개인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월세가 조금 비싸지만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고 있다. 작업 공간의 테마를 '쉼과 모험의 공간'으로 정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컬러를 숲과 바다의 중간 색인 청록색으로 정했다. 숲에서 쉬면서 바다로 상상의 모험을 떠나는 공간이다.


작업실에는 빌트인 되어있는 세탁기가 있다. 운동도 자주 하고 샤워도 자주 하기 때문에 은근 빨래를 많이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빨래에서 쉰내 가 나서 미니 건조기를 구매했다. 집에 건조기가 있는데, 작업실까지 건조기를 사야 하나 한참을 망설였었다. 어제 도착한 건조기를 사용해 보고 후회했다. '아! 진작에 살걸!'하고 말이다. 다들 이런 경험은 한두 번씩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후회는 만족감을 더 해주는 귀여운 너스레 같은 푸념이다. 수건이 8장 정도 돌아가는 미니 건조기이다. 너무 뽀송하다. 향기 시트까지 넣어서 돌렸더니 따뜻한 수건에 영혼이 깃들었다. 너무 기쁨에 벅차올라 전에 빨래해 둔 것까지 싹 다 꺼내서 세탁기, 건조기 3번 돌렸다. 이렇게 큰 기쁨을 주다니, '건조기 합격.'

어제 운동과 집안일을 해서인지, 밤에 눌린 듯 깊게 잠들었다. 운동의 장점 중 하나가 불면에 좋다는 것이다. 숙면까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눈 감고 떠 보면 시간이 지나가 있다. 아침.

커튼을 확 열어젖히고, 일어나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서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오늘은 '왠지 뭐든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놀 것이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을 잡을 일도 없고, 부탁을 주고받을 일도 없고 딱히 해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 칼럼을 넘겼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도 있겠구나. 이번 칼럼이 벌써 23화이다. 다음 달이면 벌써 2년째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제대로 글쓰기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야.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SERIES/2847?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40520




어렸을 때 책 읽는 것도 싫어하고 글씨 쓰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에 내 근육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글씨를 쓰는 것 자체가 권위에 굴복하는 행위라고 여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되도록이면 솔직하게 쓰려고 하는데, 그것도 나에게는 좀 욕심인 것 같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미화시키고 멋 부리려고 하고 있다. 뭐 그것도 나니까 '에이, 그냥 쓰자.' 하고 그냥 흐르는 대로 쓴다.


암튼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독서, 운동, 악기 연습, 작사 작곡 놀이, 청소, 집안일, 산책 등.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오롯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 들이고,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 이보다 더 행복한 게 어디 있어?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를 찾아낸다면, 그건 내게 주어진 호사를 다 누리는 거야. 여기저기 초록빛 하늘에 걸려있는 과일들을 다 챙겨 먹는 거야.

외로움.

작게 보면 재미있는 것은 결국 혼자만의 감각을 음미하는 거야. 친구들과 같이 헬스장 가도 결국 운동하는 시간은 혼자야. 물론 같이 수다도 떨고 오가면서 서로 격려도 해주는 재미가 있지. 그런데 시간도 맞춰야 하고 각자의 컨디션도 다르기 때문에 혼자 운동할 때가 편할 때가 있더라. 대신 서로 운동 동기부여가 되게 친구와 운동 사진 공유하고 운동 인스타 계정도 만들었더니, 따로 또 같이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밴드 음악도 결국 혼자만의 시간이 겹쳐져서 새로운 색을 내는 거라고 생각해.

https://www.instagram.com/workout_captainrock?igsh=OXk0MTdhdDNiYW50&utm_source=qr


다음 주 프로필 촬영이 있어서 금주 11일째야. 나는 '간헐적 금주'라고 얘기해. 간이 "'헐~'하고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하는 기간이야. 가끔 이런 식의 금주 단기 목표들을 정해 놔. 확실히 목표가 있으면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가 편해져. 친구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선언하고 지키면 폼 나잖아. 그렇다고 술을 꾹꾹 참기만 하는 것은 아니야. 금주 선언하고 한 2일 정도만 참으면 돼. 술의 중력에서 벗어나는 시기이거든. 그리고 금주했을 때 장점들에 집중해. 일단 아침이 너무 개운해. '잠시의 쾌락만 참으면 내일 싱그러운 아침을 맞이할 수가 있어.' 이런 식으로 좋은 점들을 입력해 두면 힘들지 않게 금주 놀이를 할 수 있어.

그래서 어제, 작은 크리스마스 같은 토요일을 비교적 잘 보냈어. 너무 착하게 살자 같은 글로 보일 수도 있겠다. 내가 매일 토요일처럼 살아서, 가끔 평일의 맨밥 같은 느낌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동물들에게는 요일 같은 게 없을 거야. 그저 그때그때 당기는 것을 할 뿐. 뭘 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지 말자.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은 시간이라는 보석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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