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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오늘부로 나는 금주 30일 차야.

by 한경록

친구들 오늘부로 나는 금주 30일 차야.


가끔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면, 혹시 어디 아프거나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


나는 정말 괜찮아. 머리도 마음도 맑아.

연주할 때, 그 섬세한 감각들이 느껴져서 정말 재미있어.

당연하다고 느껴졌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소중하게 느껴져. 손가락 하나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공기에 울려 퍼지는 한 음. 그 음들의 연속성으로 음악이 된다는 것. 그 음악에 친구들의 음들이 겹쳐져서 예상치 못한 빛깔의 음악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황홀한 일이지.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음악을 듣고 기뻐하거나 위로가 된다면 그것은 참 낭만적인 일이기도 해.


난 아직도 날고 싶어. 한 번도 날아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 추락 같은 것은 많이 해봤지. 그래도 아직까지 죽어본 적은 없지.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린 아직 살아 있다고.

30일 동안 금주하면서 거의 매일 운동하거나 스트레칭하고 연습하고 미디 연습을 하며, 곡 작업을 했어. 한글 타자 연습도 하고 있어.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 친구들 술자리에서 무알콜 맥주나 그냥 물 마셔도 재미있게 놀 수 있기도 하고.

나이가 들수록 좋은 점은 투명하던 시간이 리트머스 종이 물들듯이 농도가 짙어지는 게 느껴진다는 거야.

그래서 매 순간이 소중하고 짜릿하게 느껴져.


주변에 소중한 인연들에게도 감사함을 느껴. 많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또 그렇게 배워간다고 생각해.


요즘엔 물건들을 많이 정리하고 있어. 당근도 가끔 하고. 비울수록 평수가 넓어진다고 하더라. 맞는 말인 듯.

소유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같아. 고급 승용차를 사도 유지비도 많이 들잖아.

나는 길거리가 다 내 서킷이고 주차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멋진 슈퍼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잖아. 갤러리의 멋진 그림들도 다 걸어 놓을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은 소유할 수 없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 누릴 수 있는 것은 시간과 감정, 감각 같은 것 같아. 얼마 전 오디오 쇼를 다녀왔는데, 수십억의 오디오를 소유할 수는 없지만 그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질감의 음악들이 나를 스치고 간 뒤 남은 잔향 정도는 소유할 수 있었어. 마음 깊은 곳 추억 저장소 같은 곳에 쌓여가겠지.

고전에 쓰인 예쁜 활자들은 소유할 수 없겠지만 그 가슴을 울렸던 문장들은 심장의 북소리로 환생해서 다시 한번 달릴 수 있게 하겠지.


일단 30일 금주, 뭐 목표랄 것도 없고 지금 컨디션이 좋아서 계속 술 생각이 안 나네. 자연스레 당분간 금주 놀이를 할 듯해.


무대가 크건 작건 상관없어.

방구석에서 처음 기타를 잡고 F 코드를 잡는 것이든, 합주실에서 친구들과 카피 곡으로 첫 합주를 시작하거나, 학원에서 입시 연습을 하든, 관객이 한두 명밖에 없는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든, 어디든 상관없어.


음악을 한다는 성스러운 일이야. 뭐든 음악을 할 때 즐거웠으면 좋겠어. 매번 즐거울 수는 없지. 그래도 즐거움을 간직했으면 좋겠어. 친구들과 허름한 술집이나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어.


나는 계속 달리고 싶어.

그 말을 하고 싶었어.

사람들은 백세시대라고 말은 하는데, 정작 삶은 60 정도가 끝일 줄 아는 것처럼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나도 그래. 머리로는 알지만 불안이라는 것은 습관이 되어있어서 인가보다. 아직 시작하고 배우고 사랑하기에 정말 긴 시간이 남아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운 모래 알갱이 같은 시간들, 흘려보내버리지 말자.


금주 30일 차, 반신욕 땀과 함께 흘러내린 짧은 단상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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