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진의 글방 Oct 05. 2024

계단참

지금 나는 어느 계단참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언덕을 오른다. 김유신 장군 동상이 있는 황성공원 안의 작은 동산이다. 대나무 숲으로 시작되는 이 길은 울퉁불퉁한 돌로 촘촘히 짜여 있다. 중간쯤 꺾인 곳에 멈춰 있노라면 사방이 숲에 가린 듯 하늘만 휑하니 보인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았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앉아 물을 마신다. 내려다보이는 세상이 아득하다.


  헐떡이며 이 길을 오르던 그 아이가 그리워진다. 유난히 심폐기능이 약해 낮은 오르막에도 숨쉬기가 힘들어 쌕쌕 댔다. 친구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그리 가파르지 않은 데도 항상 뒤처졌다. 사람의 그림자는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홀로 남겨진 그 아이는 바람에 스치어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었다. 흔들리는 대나무 잎의 그림자가 으스스하다. 뭔지 모를 쓸쓸함과 두려움을 안고 홀로 앉아 있던 작은 여자 아이를 찾아 나는 오늘 이곳 계단참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딛고 올라온 계단 아래에 나의 시간이 박혀 있는 듯하다. 촘촘한 계단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계단참에 오기까지는 쉬어갈 곳이 없어 계속 올라가야 한다. 인생도 쉴 틈을 주지 않고 흘러만 간다. 삶을 사랑하는 이들은 시간을 작게 쪼개어 부지런히 살아간다. 많은 것을 풍성히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비법은 부지런함이라고 말하면서. 맘껏 갖지 못했던 철없고 호기심 많은 그 아이도 풍성함의 진리를 찾아 무작정 올라갔다.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는 수많은 명언들을 외우고 마음에 새기며 굳게 믿었다. 최선을 다하면 될 줄 알았다. 달세 방에 살며 열 달마다 이사를 하고, 쌀밥에 계란반찬을 먹는 친구들이 볼까 부끄러워 혼자 슬며시 보리밥에 오뎅 반찬을 먹었다. 그러나 뭐든 하면 된다는 꿈 많은 시절이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꿈꾸었다. 단칸방에 네 식구가 함께 자던 방 대신 나만의 공간도 가지고, 도서관에서 빌려만 보던 책도 사고, 대학도 가 보리라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가파른 계단은 오르기가 쉽지 않다. 인생의 계단도 순탄치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가슴에 묻은 채 취업을 했다.


  그 시절 내면에서 끊임없는 욕구들이 외치고 있었다. 학업에 대한 미련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난을 극복하는 계단을 오르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계속 올라가지 않으면 다시 내려갈 곳 밖에 없는 삶의 계단에서 멈출 줄 몰랐다. 정상만을 향하여 전력질주를 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올라갔다. 그러나 계단은 만만하지 않았다. 평지를 걸을 때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가파르고 높은 계단을 올라가 정상에 도달했을 때 성취감은 크다. 그러나 그곳을 오를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 힘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 한 채 남들이 간다고 무작정 따라 오른다면 쉬이 지치게 된다. 좁은 계단에 서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까마득한 아래를 바라보며 다시 내려갈 힘도 잃고, 이미 가버린 이들을 따라갈 용기도 잃을지 모른다. 이럴 때 두려움을 가시게 하고 휴식을 취하며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이 계단참이다.


  다행이다. 넓은 계단참을 발견했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이 숨이 차오르자 보인 것이다. 앉아서 쉬기에 충분하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혼자 외로움과 두려움에 용기를 잃고 앉아 있던 작은 아이도 그 자리에 있다. 그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시절 겁에 떨게 했던 대나무 숲의 그 스산한 바람 소리를 어른이 되어 다시 듣고 있다. 지금 나도 그때처럼 홀로 두렵다.


  삶의 한가운데 서있다.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현재의 삶도 대나무 숲에 가려 하늘만 보이는 이곳처럼 공허하다. 그토록 열심히 올라왔던 곳이 어디였는지 이제야 궁금해진다. 무엇을 향해 그토록 쉼 없이 전진했던가. 나무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가쁜 숨을 내 쉬며 홀로 앉아 있는 그 아이를 만난다.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욕심이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하게 했다. 심장이 머질 듯이 벅차하면서도 정상에 다다르지 못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아이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올라가야만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어떻게 가야 할지를 생각지 못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정상을 향해 위로만 오르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욕구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긴장하게 하고 알지 못할 두려움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인생의 계단참에서 잠시 쉰다. 멈추지 않고 왔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청춘도, 사랑도 사치로 여기며 악착같이 오르려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숨 가쁘게 올라오느라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결혼할 나이여서 했던 결혼이었다. 가족과 함께 좀 더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는 사이 인생의 반이라는 계단을 올라와 버렸다. 게으름 없이 살았다 생각했는데 마음은 늘 부족하다. 비어버린 내 삶의 이유는 무엇일까?      

  계단참에 앉아 숨을 고른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무엇인가 나에게 말하는 듯하다. 문득 나를 만났다. 일상 살아가기에만 급급했던 나는 가려진 마음의 구석방에서 울며 꿈을 찾아다니던 아이를 모른 체했다. 맞닥뜨려진 환경을 핑계 삼아 ‘나’를 묻으며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어 있었다. 늘 목메어 찾아다니던 허전함의 정체는 ‘나’, 였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하니 좀 진정이 된다. 무작정 올라온 것을 후회도 해본다. 다른 길은 없나 살펴도 본다. 이렇게 잠시 이곳에서 쉬다 보니 새 힘도 생긴다. 황량했던 황성공원에서 쓸쓸히 긴 칼 높이 들고 나라를 지키던 김유신 장군 곁에도 이제는 제법 인적이 드나든다. 이곳은 이제 쓸쓸하고 적막한 외로움만 있는 곳이 아니다. 노년의 두 부부는 서로의 팔을 잡아 주며 지나간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여인을 바라본다. 나는 왜 한 번도 이곳을 자유로이 걷지 못했을까. 나의 눈엔 올라가야 할 계단만 보였을 뿐 나무도, 꽃도 보지 못했다.      


  중년의 계단참에서 방향을 돌려 보려 한다. 계단참은 쉼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한 전환점 이기도하다.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며 위로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며 잘못 판단한 것은 없는지 살펴본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지금에라도 오류가 있었다면 수정해보고 싶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보고 싶다. 느긋한 마음으로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며 오늘을 즐거이 누려 보고도 싶다.

 천천히 가도 정상에는 도달할 수 있다. 이런 당연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숨이 차도록 쉼 없이 갔다. 다행히 아직 올라가야 할 계단들이 남아 있기에 위로가 된다.      

  홀로 남겨져 두려움에 떨던 그 아이는 이제 중년이 되어 다시 언덕을 오른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청설모도 만났다. 대나무만 가득한 숲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름 모르는 작은 나무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에도 있었으련만 내가 보지 못한 것이리라. 무작정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세상을 보는 눈을 가리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했다. 사방이 막힌 숲이 아니라 나를 품고 있는 자연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했다.


  정상에 오른 후 내려올 길도 남아 있기에 서두르지 않겠다. 다음 계단참까지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가겠다. 한발 한발 디디며 언덕 위에 피는 진달래꽃도 보고, 푸른 잎들이 주는 그늘의 시원함도 느끼고, 떨어지는 나뭇잎 비도 맞으며, 흰 눈에 발자국도 찍어보며 가겠다. 소모해 버린 체력을 돋아줄 참도 먹으며 쉬어 가겠다.

  정상에 오른 후 또다시 내려와야 할 내림계단에서는 지난 시간들을 두런두런 이야기할 친구도 사귀어 보리라. ***

작가의 이전글 로딩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