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 21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머리가 복잡해져 환기나 시켜볼까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 본다.
마침 눈에 들어온 밝고 예쁜 보름달.
오늘따라 유난히 더 선명하게 보이고
간직하고 싶어져 사진을 찍어볼까
슬며시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더듬더듬 찾아 얼른 꺼내든 핸드폰.
맘에 드는 구도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전깃줄이 눈에 걸리네
횡단보도 건너고 찍어야겠다.
그런데 웬걸?! 어둠 속에 숨어있던
구름이 나타나더니 보름달을 스르르
감싸안고 암흑의 세계로 끌고가네
눈앞에서 기회가 사라져간다.
완벽하게 자취를 감춰버린 보름달.
뒤늦게 그린라이트를 주는 신호등에
허탈함을 느끼다 혹시나 싶어 얼른
길을 건너고 다시 하늘을 본다.
하지만 역시나 깜깜 무소식 보름달.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기다려 보지만
화면에 담기는 건 희미하게 보이는
눈치 없는 구름과 어둠 뿐이다.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기회.
때로는 완벽히 준비가 되지 않더라도
일단 셔터를 누르고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침 눈에 들어온 밝고 예쁜 보름달.
아름다운 달빛을 간직하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건 과감함 혹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흐린 구름을 찍는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여기 나오는 사진작가는 며칠을 밤새
기다린 끝에 나타난 눈표범을 두고
사진을 안 찍고 그냥 지켜본다.
작가는 말한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개인적으로
카메라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눈에 걸렸던 전깃줄과 길었던 신호,
절묘한 타이밍에 하늘을 스친 구름이
어쩌면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게 해줬나.
저녁 9시 27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긴다.
한동안 문득 저녁 하늘을 올려보고,
구름 사진을 꺼내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