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레시피, 특허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호준 변리사입니다.
최근 '먹방'이나 '쿡방'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독특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소개하는 유튜버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만약, 한 유튜버가 소개한 레시피가 사실 '특허'로 등록된 레시피였다면 어떨까요?
"에이, 음식 레시피가 특허가 돼?"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네, 됩니다."
오늘은 이 '특허 레시피'를 둘러싼 흥미로운 법적 쟁점들을 실제 사례와 함께 알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단순히 '재료를 섞는 순서' 정도로는 특허를 받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과 비교하여 새롭고(신규성), 더 나은 효과(진보성)가 명확하다면 훌륭한 '발명'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유명한 맛집들의 핵심 비법도 특허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소보로 빵을 튀기면 고물(토핑)이 기름을 먹어 느끼해지기 마련입니다. 성심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물 제조 시 '버터'를 제거했습니다. 이 간단하지만 핵심적인 차이로 인해 튀겨낸 후에도 소보로가 기름지지 않고 바삭바삭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 이는 '튀김 소보로 빵의 제조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등록된 특허입니다.
강릉의 명물 짬뽕 순두부 역시 특허입니다. 뜨거운 짬뽕 국물에 순두부를 넣으면 순두부가 쉽게 풀어져 버리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 특허는 순두부에 간수 또는 전분을 첨가하여 응집력을 높여, 고온의 육수와 섞여도 순두부가 풀어지는 현상을 방지합니다. 또한 '양주'를 미량 첨가하여 순두부 특유의 비린 맛을 잡는 방법 역시 특허의 핵심 기술입니다.
여경옥 셰프 '바삭한 탕수육' 중식의 대가 여경옥 셰프는 '오랫동안 껍질이 바삭한 탕수육 제조방법'으로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 특허의 핵심은 튀김 반죽에 탕수육에는 잘 쓰지 않던 '강력분'과 '옥수수 전분'을 특정 비율로 혼합하고, '이스트'와 '설탕'을 넣어 1시간 동안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튀김옷이 눅눅해지지 않고 바삭함이 오래 유지되는 효과를 얻어냈습니다.
이처럼 레시피는 명백히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특허받은 레시피를 누군가 따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가장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제가 성심당 특허를 보고 집에서 저녁 식사로 '튀김 소보로'를 만들어 먹으면 특허 침해일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특허법(제94조)은 특허권자가 "업(業)으로서" 그 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한다고 규정합니다. 즉, 사업상 목적(영리적이든, 반복적이든)이 아닌 '개인적 또는 가정 내의 실시'에는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요리 유튜버가 이 레시피를 똑같이 따라 하며 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은 어떨까요?
정답은 '특허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입니다.
"유튜버도 1인분 만들어서 자기가 먹은 것뿐인데?"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튜버의 '업(業)'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제작하여 광고 수익 등을 얻는 것'입니다.
즉, 유튜버는 자신의 주된 영업 활동(수익 창출)을 위해 특허받은 레시피(방법 발명)를 허락 없이 사용한 것입니다. 이는 명백히 '업으로서의 실시'에 해당하며, 특허권 침해를 구성하게 됩니다.
특허 침해가 맞다면, 특허권자는 얼마를 배상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두 번째 흥미로운 지점이 나옵니다.
손해액의 기준은 유튜버가 먹은 '요리 1인분의 가격'이 아닙니다. 특허법 제128조 제4항에 따라 '침해자가 그 침해행위로 인하여 얻은 이익액'을 특허권자의 손해액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침해행위: 특허 레시피를 사용해 영상을 제작한 행위
얻은 이익: 그 영상으로 인해 발생한 광고 수익, PPL 수익, 후원금 등
따라서 특허권자는 유튜버가 해당 영상으로 벌어들인 수익 전체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법정에서는 영상 수익 중 레시피의 '기여도'를 따지게 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만약 유튜버의 그 영상이 '대박'이 나서, 사람들이 "와, 저 레시피(성심당) 대단하다!"라며 오히려 특허권자(성심당)의 '튀김 소보로'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침해는 침해인데, 결과적으로 특허권자에게 이익이 되었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허락 없이 특허를 '업으로서' 사용한 행위는 여전히 특허침해입니다. 따라서 특허권자는 유튜버에게 영상 삭제(침해금지 청구)를 요구할 법적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손해배상'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손해배상은 '입은 손해'를 돈으로 메꾸는 것인데, 이 경우는 손해는커녕 이익이 났습니다.
이때 유튜버는 민법의 '손익상계(損益相計)' 법리를 주장할 것입니다.
손익상계란? 불법행위(특허침해)로 인해 피해자(특허권자)가 손해를 입는 동시에 이익도 얻었다면, 공평의 원칙상 손해액에서 이익을 빼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법원의 판단:
특허권자가 입은 손해 (추정): 유튜버의 영상 수익 1,000만 원
특허권자가 얻은 이익: 영상으로 인한 추가 매출 이익 5,000만 원
결과: (손해 1,000만 원) - (이익 5,000만 원) = -4,000만 원
특허권자가 입은 금전적 손해는 '0원'이 됩니다. 따라서 특허권자는 영상 삭제는 요구할 수 있어도, 금전적 배상은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 이제 크리에이터들에게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레시피는 특허권자가 가진 최고의 '영업 비밀(Trade Secret)'입니다. 특허를 출원하면 20년간 독점권을 갖는 대신, 그 레시피를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100년 넘게 특허 대신 영업 비밀을 택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많은 셰프나 기업들은 '하이브리드 전략'을 씁니다.
특허 문서에는 핵심 기술을 공개하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스푼'은 숨기거나, 실제와 비율을 다르게 기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탕수육 특허에 "강력분과 옥수수전분을 1:7로 섞고 1시간 숙성"이라고 기재했다면, 실제 매장에서는 1:6.5 비율로 섞고, 숙성 시 비밀 재료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은 유튜버에게 '위기'가 아닌 '새로운 콘텐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특허 레시피를 '따라 하는' 콘텐츠(침해 위험)가 아니라, "특허 레시피에서 실제 맛집 레시피 복원하기"라는 '챌린지'형 콘텐츠를 만드는 것입니다.
"공개된 특허(1020200037588)를 입수했습니다."
"특허 레시피 그대로 탕수육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실제 매장에서 파는 탕수육과 맛을 비교해봅니다."
"맛이 다르다면, 그 차이를 만드는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이런 콘텐츠는 특허 문서를 '리뷰'하고 '분석'하며 '실험'하는 창의적인 활동으로, 단순 침해 주장에서 벗어날 명분이 생길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훨씬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특허 레시피'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세 가지 교훈을 줍니다.
창작자(셰프)에게: 당신의 독창적인 레시피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강력한 '자산'입니다.
특허권자에게: 때로는 침해로 보이는 행위가 최고의 마케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적 대응과 비즈니스적 판단 사이의 현명한 저울질이 필요합니다.
크리에이터(유튜버)에게: 특허는 '금지선'이 아니라 '새로운 챌린지를 위한 출발선'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따라 하지 말고, 특허라는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진짜 레시피'를 찾아가는 당신만의 창의적인 여정을 콘텐츠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호준 변리사는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최상의 전략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AI, cloud computing, Date center, 소프트웨어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의 특허 전략 수립에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벤처캐피탈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타트업의 보육과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Series A 부터 IPO 까지 성장의 모든 단계의 전략적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