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이 판매의 날
3월 22일, 맑지만 바람
"고무 다라이가 왔어요. 김장할 때, 애들 목욕시킬 때 쓰기 편한 다라이입니다. 농사 물을 받아 놓을 수 있는 대형 고무통도 있습니다. 밖에 나와 보세요. 다라이가 왔어요". 오늘 나는 아빠를 따라 장사하러 나왔다. 1.5톤 트럭뒤에, 다양한 크기의 붉은색 다라이를 싣고 시골 마을을 지나는 중이다. 지금 시간은 11시, 아직 한 개도 팔지 못했다.
어제저녁 아빠가 안방에서 마이크를 만지작 거리는 걸 봤다. 처음엔 얼마 전에 산 노래방 기기를 트는 건가 했는데, 장사에 쓸 홍보용 테입을 녹음하는 중이었다. 전축과 마이크를 작동시키고, 종이에 적은 장사 멘트를 조심스레 읽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녹음이 어색한지 계속 실수했다. 혀가 꼬이기도 하고, 멘트를 건너뛰기도 해서 30분 넘게 일을 못 끝내고 있었다.
"아빠, 내가 할게. 마이크 이리 줘."
나는 마이크를 뺏어 다양한 버전으로 녹음을 진행했다. 이목을 끌기 위해 사투리도 넣어보고, 유명 개그맨 흉내도 내보았는데 영 이상해서, 그냥 평범한 달걀장수 톤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전축의 구간반복 기능을 이용해, 1시간짜리 홍보 테이프를 만들었다. 아빠는 내 기술력에 깜짝 놀라했다. 1시간 동안 줄곧 녹음할 생각이었는데, 10분 만에 테잎이 완성 돼버렸으니까. 저녁 식사 후, '내일 할 일 없으면 장사나 같이 가자'라고 말하셔서, 알겠다고 했다. 어제처럼 혼자 있는 것보단 장사가 나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오늘 새벽,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 보온병을 챙겨 아빠와 함께 길을 떠났다.
물건을 하나도 못 팔아서였을까, 장사는 단지 지루한 행위의 반복 같았다. 처음에 우린, 도로를 달리다 샛길로 빠져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보통 마을 중심부엔 경로당이나, 사람들이 모여 쉬는 마을 회관이 있는데, 그곳에 트럭을 정차한 후 광고 방송을 시작한다. 확성기를 통해 내가 녹음한 목소리를 퍼뜨리며, 잠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다 반응이 없으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손님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또 다른 동네로 이동. 이게 기본 패턴이다. 가끔 까칠한 주민을 만나면, 확성기 소리를 줄이기도 하는데 그것 말고는 변하는 게 없다.
세 번째 동네에 들어서자,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졌다. 손님은 한 명도 없고, 확성기 소리엔 지지 직하는 소음이 껴있어 갈수록 신경에 거슬렸다. '아빠는 이 일이 지겹지도 않나?' 하며 바라봤는데, 무표정하게 핸들만 돌리고 있었다. 아빠는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터놓지 않아서, 얼굴만 봐선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고무 다라이 전에는 달걀을 팔았고, 그전에는 박카스 같은 드링크제를 공장에서 덤핑으로 떼와 약국에 넘겼다. 아빠가 밤늦게 오토바이에 박카스를 잔뜩 싣고 오면, 온 가족이 조심스레 물건을 창고로 옮기던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못 봤지만 결혼 전에는 기차에서 달걀이나 콜라를 팔았다고 하니, 일평생 물건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보내며 살아온 것 같다.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아빠에게, 트럭에 앉아 장사하는 건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전엔 판매에 실패했다. 아빠와 난 동네 사당나무 밑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었다. 3월인데도 도시락은 차가워서 보온병의 따뜻한 물을 밥에 말아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동그랑땡도 있어서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아빠는 평소처럼 5분 만에 밥을 먹은 뒤 차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조석에 앉아 땀 냄새가 찌든 수건을 베개로 삼고, 유리창에 다리를 올려 자기 시작했다. 난 그 모습이 싫었다. 자세도 천박스러워 보였고 아빠의 상처 입은 다리가 드러나는 게 불편했다. 나는 밖에서 차 안을 볼 수 없도록, 파란 가림막을 유리창 위에 덮은 후, 운전석에 앉아 잠을 잤다.
잠시 후 아빠가 날 깨웠다. 시간은 벌써 2시. 우린 가림막을 해체하고 서둘러 새로운 마을로 떠났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팔았다. 바가지만 한 크기의 소형 상품이 인기였다. 하지만 저렴한 제품이라, 남는 게 별로 없었고 아빠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집 근처 마을에 들렀을 땐,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린 확성기 소리를 줄인 채 차를 움직였다. 한 바퀴만 빨리 돌고 갈 요량이었다. 그때 농사를 마치고 돌아온 할아버지가 차를 세우더니, 아빠와 몇 마디 나누고 트럭에 올라탔다. 혼자서 다라이 4개를 산 것이다, 그것도 가장 큰 물건으로. 우린 할아버지의 집과 논 그리고 외양간에 다라이를 건네준 후 20만 원을 받았다. 장사의 끝에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아빠는 확성기를 끄고, 평소 좋아하던 배호의 테입을 찾아 틀었다. '비 내리는 명동 거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단조로운 리듬과 유치한 가사밖에 없는 철 지난 곡을 아빠는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았는지 집에서 부를 때 보다, 더 구슬프게 더 소리 높여 불렀다. 그렇게 한곡을 완창하고 난 뒤, 눈감고 쉬던 내게 말했다.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 좀 사가자."
나는 3만 원을 가져가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샀다. 군것질 거리를 가지고 집에 들어서자, 누나가 냄새를 맡고 방에서 나왔다. 엄마는 거실에 상을 펼친 후 음식을 하나둘 올렸다. 그 상태로 아빠를 기다렸는데, 한참 동안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봤다. 아빠는 내일 비가 온다는 뉴스를 듣고, 고무 다라이를 파란 가림막으로 덮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도와 가림막을 펼치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두꺼운 줄로 고정했다. 아빠는 마지막으로 트럭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이제 됐다.'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잠시 트럭 옆에 서서 오늘 하루를 회상했다. 그리고 가림막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가림막이 소중한 다라이를 지켜주기를, 그래서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만 행복하길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