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지 문지기 Feb 15. 2023

4월 4일 (마니또 행사)

학원에서 알게 된 아이

4월 4일, 완연한 봄 날씨


지난주부터 학원을 다니고 있다. 집 근처에 있는 고려 속셈학원에서 수학을 배우는 중이다. 아직 2학년 이긴 하지만, 내년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틈틈이 공부 해야 한다. 만일 연합고사에 실패해 공고나 실고에 가야 한다면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다. 촌스러운 교복도 싫고 쓸데없는 걸 배울 바엔 아빠와 장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공고나 실고에 들어가면, 3학년부터 현장 실습에 나가서 무보수로 일하다, 잘해야 그 작은 업체의 직원이 되는데 이런 빤한 삶을 살고 싶진 않다.


다행히 윤 선생님이 기본 개념과 문제풀이를 반복해 줘서, 서서히 수학에 눈 뜨고 있는 중이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원이라 원장 선생님과 단과 선생님 모두 열심히다.


얼마 전에는 학원에서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마니또 게임이었는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랜덤으로 매칭해서 각자 선물을 교환하는 행사였다. 나를 마니또로 선택한 애는 학원에서 가장 이쁜 애였는데, 내게 관심이 없었는지 몇 번 사용한 흔적이 있는 아기 곰 모양의 양초를 건네줬다. 그리고 작은 쪽지도 함께였는데 '너의 진실한 친구가 되고파..'라는 의미 없는 글만 있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모두 버려 버렸다. 하긴 그 애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나도 내가 선택한 마니또가 싫어서, 누나 책장에 있던 '혼자 도는 바람개비'라는 우울한 책(소년 소녀 가장의 이야기)을 선물이라고 줬으니까. 마니또 게임 덕분에 여러 사람의 마음만 상한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며칠 전 누군가 윤 선생님에게 내 마니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 마니또 게임이 끝나고 선생님이 정체를 알려줬는데, 하남 중학교에 다니는 준미라는 여자애였다.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는데, 선생님한테 말할 정도면 날 꽤 좋아하는 것 같다. 얼굴은 학원 애들 중 3~4위 정도고, 키도 160cm 정도 돼서 나도 싫지는 않다. 사실 선생님한테 이야기 들은 뒤로 그 애한테 관심이 생기는 중이다. 하지만 먼저 말 걸진 않아야지. 만날 때마다 인사하고 가끔 웃어주면, 그 아이가 다가올 것 같으니 조용히 기다릴 셈이다. 어차피 성당에서 만난 한희도 있고 난 별로 아쉬울 게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3월 22일 (아빠와 떠난 장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