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 mango Feb 01. 2019

그림책 창작으로 성장하는 교실

(학급문집) 그림책에 내 마음이 

그림책 창작은 ‘책 읽어주기’부터

 3월부터 학생들에게 꾸준히 책을 읽어주었다. 저학년도 아니고 고학년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한들 집중할까 싶지만, 오로지 이야기의 힘만으로 학생들은 귀를 쫑긋 기울인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장씩만 읽어줄 요령이었다. 학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두세 장을 연속으로 읽어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목이 아프기도 했지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좋은 책을 골라 읽어줄 때면 마법과 같은 순간을 꼭 경험한다. 수업시간에 하품하던 아이들도 생생하게 눈빛이 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매번 기다려진다.


  ‘책 읽어주기’는 학생들의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물론 읽기 독립이 된 학생들도 제법 많지만, 아직도 책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다. 독서의 재미를 몸소 경험한다면 잔소리하지 않아도 읽고 싶을 테니까. 더불어 책 읽어주기는 자세히 보고 들을 기회를 제공한다. 묵독으로 빨리 읽었을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책 속의 세상에 초대되어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 생각할 거리가 펼쳐진다. 스스로 가상의 상황에 대답하는 훈련을 통해 학생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그림책 창작으로 성장하는 교실 

  1학기에는 동화책과 그림책을 번갈아 가며 읽어주었다. 그리고 1학기 말, 학생들에게 하나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우리 반 학생들 모두 작가가 되어, 한 권의 그림책을 창작해 보면 어떨까? 선생님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질문 하나로 이야기를 만들며 한 뼘 성장했거든.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같이 해보자.

  1학기에는 독자로서의 경험을 충분히 누리게 하고 싶었다면, 2학기에는 저자가 되는 주체적인 경험을 학생들에게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 


  학생들은 모두 이야기의 씨앗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 그 씨앗을 꺼내지 않으면 휘발되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그 씨앗을 꺼내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면 한 편의 이야기가 생긴다. 내면의 씨앗을 찾아 싹을 틔우고 이야기로 자라게 하는 일은 곧 창조이자 생산이다. 작가와 독자라는 치안적 질서라는 틀을 깨고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주체로 학생들이 설 수 있게,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림책은 삶의 압축본

  그림책에는 삶의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가 등장한다.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 나름의 새로운 시선과 해결책이 담겨 있다. 우리는 그림책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만나고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엿본다.이를 역으로 적용하면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된다. 


  나 역시 경험 속에서 떠오른 삶의 문제로부터 그림책을 만들었다. 실제로 캄보디아 봇뱅마을을 다섯 차례 방문하면서, 나눔에 대한 고민이 5년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맨발로 축구를 한 날》(조시온 글, 이덕화 그림)은 ‘나눔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끝에 길어 낸 그림책이었다. 그 과정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며, 자기 삶에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삶의 스토리텔링이란?

  삶의 스토리텔링이란 나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야기를 통해 구상화시킨 것이다. ‘문제, 이해, 책임’이라는 재료에 ‘상상’이라는 조미료를 가미하여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재료를 다듬고, 썰고, 조리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마음 안에서 묵히면 묵힐수록 더 깊은 맛을 내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여러 문제를 만난다. 항상 찾아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등장할 때 겪는 두려움과 중압감은 상당하다. 학생들도 학급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난다.


문제-이해-책임

  문제(Problem)란 그리스어로 ‘앞에(Pro)’와 ‘놓여있다(Blema)’는 의미가 합쳐진 말이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 문제이다. 생기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앞에 놓여있는 것. 우리 삶의 문제를 발견하면, 내 인생의 질문이 생긴다. 이야기는 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해(Understand)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직접 서보는 것(under stand)이 필요하다. 경험해야만 온갖 감정이 내 안에 나타난다. 내 안에 휘몰아치는 분노, 두려움,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 속에 수반된 감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1학기 동안에는 감정에 관련된 그림책을 학생들과 함께 보면서 감정을 연구했다.


  마지막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여기서 책임이란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답하는 것이다.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단어에는 ‘대답(Response)’과 ‘할 수 있다(Ability)’는 의미가 들어있다.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경험한 후 자신의 언어로 대답할 수 있는 것. 그게 결국 스토리텔링이다. 


삶의 문제는 내가 정의하는 것!

  삶의 문제는 문제집처럼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서 정의해야 한다. 내가 발견한 문제를 열심히 풀다 보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 문제에 답을 찾으면서 자기 서사의 힘이 생긴다. 자기 삶에 마주한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본 학생들은, 또 다른 삶의 문제에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학창시절 동안 세상에 주어진 문제만을 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푸는 시도를 해보길 바란다. 추상적인 답변이 아니라 삶의 구체성이 담긴 답변으로 말이다. 


  《1984》 의 저자 조지오웰은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과정과 비슷하다. 성장은 우리가 매일같이 부딪히는 문제를 풀면서 일어난다. 학생들이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탐색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세상과의 접점을 넓히길 희망한다.


   드디어 학급 1년 프로젝트로 학생들의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학급 정원 18명의 소중한 이야기를 각각의 특색있는 그림책으로 담았다. 마음에 담아뒀던 이야기의 씨앗을 꺼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한 편의 이야기가 탄생했다. 오로지 그 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학생들은 붓펜, 파스텔 등을 이용하여 자유로운 그림으로 이야기를 감각 있게 표현했다. 여기에 실린 그림책을 통해 학생들의 고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의 내면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그림책에 내 마음이》e-book으로 만나기: http://bit.ly/2DIOyUF                                             

학생들의 창작그림책 학급문집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책에 내 마음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