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 mango Oct 02. 2016

나비효과

독서교육 사례: 그림책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미세한 날갯짓이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한다는 의미이다.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나 우리 주변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 년 전 ‘메르스’ 여파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불안에 떨었으며 주변에서 기침만 해도 온갖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불신했다. 각종 행사는 줄줄이 취소되었고 학교도 잠시 동안 휴업을 내걸었다. 나라 전체의 경제가 휘청거렸다. 이 년 전에는 온갖 부정부패의 고리로 꽃을 채 피우지도 못한 채 진도 앞바다에 수많은 영혼들이 잠겼다. ‘돈이 전부’라는 맘모니즘이 점철된 사회에서 불특정 다수의 부조리한 날갯짓이 만들어낸 ‘우리’의 합작품이었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전해야 할까? 자라나는 세대들이 우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에 어그러진 여러 병리 현상들을 제대로 인지해야 할 비판적인 ‘눈’이 필요할 듯싶었다. 당장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은 아니더라도 같이 고민할 수 있게 물꼬를 트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하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모기의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아기 올빼미가 죽게 된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낸 책,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라는 그림책이 학생들에게 사회의 ‘나비효과’를 풀어내기엔 제격일 것 같았다. 그 책을 학생들에게 읽어주었다.      


  서아프리카 옛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모기가 이구아나에게 ‘자기는 고구마처럼 크다’고 허풍을 떠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출발한다. 이구아나는 모기의 헛소리를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 나뭇가지 두 개로 귀를 막고는 툴툴거리며 비단뱀 옆을 지나간다. 뱀은 이구아나가 나쁜 주문을 건다고 생각하고는 토끼굴 속으로 숨는다. 뱀을 보고 깜짝 놀란 토끼는 토끼굴을 뛰쳐나와 죽을힘을 다해 뛴다.  까마귀는 그 모습을 보고 위험한 짐승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해 '까악 까악'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를 들은 원숭이는 까마귀와 함께 위험을 알리려고 나무 사이를 휙휙 지나다니다가 썩은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그것은 결국 올빼미 둥지를 덮치고 아기 올빼미 한 마리가 그만 깔려 죽는다. 동물의 왕 사자는 아기 올빼미를 죽인 범인을 조사하는 와중에, 이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한 시발점이 ‘모기의 헛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재판 과정을 몰래 엿보고 있었던 모기는 사람들 귓가에 맴돌면서 속삭인다고 한다. “아직도 다들 나한테 화가 나 있어?”     


  아기 올빼미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코믹스럽게 그렸지만 동물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와 무척 닮아있다. 자기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우리의 모습과 말이다. ‘올빼미를 왜 죽인 거니?’라는 사자왕의 물음 앞에 동물들은 모두 남 탓을 한다. 더 이상 둘러댈 것이 없는 ‘모기’만이 결국 공공의 적이 된다. 여기서 잠깐! 정말 모기만이 아기 올빼미를 죽음으로 내몰고 갔을까?     

  

  학생들에게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모기, 이구아나, 비단뱀, 토끼, 까마귀, 원숭이 6마리의 동물 중에 아기 올빼미의 죽음에 ‘가장 문제적 동물과 그 이유’를 쓰라고 하였다. 각자의 입장을 정한 후 칠판에 나와 해당되는 문제적 동물 아래에 포스트잇을 붙인다. 이는 일부 적극적인 몇 명 학생들로만 진행되는 토론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입을 다문 학생들에게도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충분히 고민한 후에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다면 더욱더 활발한 토론이 일어난다.      


 물론 이야기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모기’를 가장 큰 문제적 동물로 지목할 것을 예상하여, 토론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모기의 헛소리를 들은 이구아나가 귀를 막은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비단뱀이 이구아나가 나쁜 주문을 건다고 생각하고 토끼굴에 들어간 것은 정당할까?” 

                                         ...

    

  1차 토론에서는 역시나 많은 학생들이 모기를 가장 문제적 동물로 지목하였다. 몇몇 학생들은 다른 동물들을 선택하였는데 제시한 이유가 참 흥미로웠다. 먼저 이구아나를 선택한 학생들은 ‘아무리 상대방이 황당한 말을 할지라도 귀를 막는 행동은 무례한 행동이고 농담으로 들을 줄 아는 아량이 없었기에 빚어진 사건이다’고 했다. 비단뱀을 선택한 학생들은 ‘이구아나가 나쁜 주문을 거는 것은 자신의 상상일 뿐 사실이 아니다. 또한 비단뱀은 토끼굴을 무단 침입했다’고 했다. 토끼를 선택한 학생들은 ‘토끼가 뱀을 불신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라고 했다. 까마귀를 선택한 학생들은 ‘까마귀는 위험이 닥치면 알려주는 일을 하는데, 잘못된 판단으로 거짓 정보를 전했다’고 했다. 원숭이를 선택한 학생들은 ‘원숭이는 아기 올빼미를 죽인 직접적인 살인자이다. 고의가 아니었더라도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자신의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므로 그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선택한 동물 별로 학생들의 의견을 들은 후 다시 포스트잇에 최종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라고 했다.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면 바뀐 의견을 적으라고 하였다. 제법 많은 학생들의 의견에 변화가 있었다. 한두 명의 논리가 여러 명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 활동의 진정한 목적은 '가장 문제적 동물을 뽑는 것'에 있지 않다. 자신들의 잘못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남 탓만 하고 있는 동물친구들에게 아기 올빼미의 죽음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쯤에서 학생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정말 아기 올빼미를 죽게 한 동물들은 누구일까?” 학생들은 그제야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도 되냐고 묻는다. 문제적 동물 하나만 선정하기 너무 힘들었다나. 그러고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토론은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만나 부딪치면서 합리적인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학생들은 가장 문제적 동물을 나름의 근거를 들어 토론하는 와중에, 그들이 어떤 과오를 범했는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만약 이구아나가 모기의 허풍을 듣고 그냥 웃고 넘겼더라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의 작은 선택이 결국엔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인과의 끈이다. 나비효과가 지금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삶을 인간답게 만드는 커다란 물결은 결국 우리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이 책은 말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