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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나

보슬보슬한 솜털 속을 살며시 젖히면 그 속에 숨은 뽀얀 목련 꽃잎들이 나온다. 

마치 갓난아이 엉덩이같이 토실토실하다. 꽃잎을 보며 큰애 신생아 때 생각에 잠깐 빠진 순간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꽃잎은 금세 갈변했다. 실수로 꽃잎을 버려야 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시 집중해서 한 겹 한 겹, 잎이 난 순서를 거스르지 않고 조심스레 펴 줬다.      



목련꽃잎을 펴고 있는 모습



꽃차는 꽃잎이 피기 전 봉우리를 따서 만들어야 한다. 인공적인 힘으로 펴주지만, 최대한 힘을 빼줘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잎이 다치지 않도록 잘 살핀 뒤 수술은 뾰족한 가위로 잘라줬다. 곱게 단장한 목련꽃은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팬 위에 뒤집어 놓았다. 

온도가 너무 높아 연약한 잎이 타지 않도록 옆에 붙어서 집게로 자리를 바꿔가며 지켜봐야 한다. 조용한 집에서 혼자 작업하려니 옛날 생각이 났다.     




     


가족을 목련꽃 다루듯이 온 마음 다해 조심조심 살폈다. 세상을 무서워하는 나는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끼고 살았다. 외출할 때도 언제나 손과 발이 되어주어야 마음이 편했다. 자유롭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실 속 화초처럼 키웠다. 내 정성이 과해 보였는지 어른들은 잦은 참견을 하셨다.     

“오늘은 어디 골목에서 애들 기다리고 있노?”

“밥순이 밥하러 안 가나?”

“대강대강 좀 하지~”

나에게 건네는 인사말은 대부분 이랬다.

너무 그렇게 마음 다하지 말라고 애들 커서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씀을 들을 때면 ‘그럼 너무 좋지요~’ 속으로만 대답하고는 아주 많이 먼일이라 여겼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두 아이를 번갈아 내려주고 태워오는 일정을 모두 마치고 아이들과 보낼 주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첫째는 학원수업을 마치자마자 약속이 있다며 집에도 오지 않았고, 막 사춘기가 시작된 둘째까지 “엄마~ 다녀올게~” 라며 흥분된 목소리로 뛰쳐나갔다. 코로나가 심하다고 말릴 겨를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갑자기 휑한 집에 홀로 앉아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엊그제 배운 목련꽃을 펼쳤다.          


아무도 없는 집.

아니다. 나만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집이구나.

아이들과 보낼 주말에 부풀어 있던 마음을 가라앉히자 왁자지껄해야 하는 집의 고요는 물 한 방울 소리까지도 폭포처럼 들리게 했다.      


내 숨소리가 너무 귀에 쟁쟁하게 들려서 잔잔한 노래를 틀고, 다시 작업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팬 온도가 적당히 오르니 꽃 향이 코끝을 간지럽혀 주었다. 거실 구석구석에도 목련향이 퍼졌다. 때마침 따스한 햇살을 벗 삼아 커튼을 젖히고 불어오는 바람까지 드라마의 한 장면같이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황홀함을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무도 없는 순간을 만나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구나!’ 다행이라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집중하고 꽃을 바라봤다. 꽃차를 덖는 시간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다. 이후로도 때때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좋아 행복했다.

자신을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나답게 살 수 있고, 인생이 즐거워지며, 마음도 너그러워진다는 말의 뜻을 조금씩 이해할 것 같았다. 그 즐거움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행복해질 것임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언니~ 저 목련꽃을 펴고 있는데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요~”

꽃차를 알려준 언니께 문자를 보냈다.      



완성된 목련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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