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산 Feb 22. 2023

재우 삼촌과 우리형

드라마 <일타스캔들>이 화제다. 정경호의 싱크로율 100% 일타 강사 연기, 현실 고증 200%의 대학 입시 촌극 그리고 전도연이라는 존재 그 자체. 하지만 내가 <일타스캔들>에 눈길이 간 건 또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재우 삼촌’의 존재였다.


나에게는 재우 삼촌처럼 자폐증을 가진 형이 있다. 시종일관 초점없는 눈동자, 꼭 성을 붙여서 풀네임으로 부르는 지칭법 그리고 드라마 속 와플처럼, 한 음식에 꽂히면 한동안은 그것만 먹는 식습관까지. 재우 삼촌의 모습에서 형의 모습이 상당 부분 겹쳐 보였다.


특히 재우 삼촌이 경찰서에 간 에피소드는 정말로 비슷한 지점이 많았다. 단지 카페 알바 권진경씨가 구워준 ‘와플’이 좋았던 재우 삼촌은, ‘권진경씨’의 오해로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다. 일종의 스토킹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이후 허겁지겁 경찰서에 온 재우 삼촌의 누나 행선은 권진경씨의 남자친구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그러게 왜 정상도 아닌 사람을 싸돌아다니게 하나!”


위 대사를 듣고 소름이 쫙 끼쳤다. 정확히 같은 말을 우리 가족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형이 지하철에서 한 여성을 실수로 가격했던 날이었다. 허겁지겁 경찰서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그 여성에게 거듭 고개를 숙였지만, 돌아온 말은 위와 같은 말뿐이었다. ‘그럼 자폐인은 집에만 있어야 되냐’는 반박이 머릿속에 멤돌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행선처럼 죄송하다뿐이었다.


그런데 드라마에는 우리 가족이 겪은 현실과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권진경씨’의 존재였다. 남자친구의 발언 뒤, 이어진 그녀의 대사는 다음과 같았다. '고소를 취하하겠습니다.' 행선으로부터 재우 삼촌의 상황을 알게 된 ‘권진경씨’가 사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난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형과 우리 가족이 경찰서에 간 날, 우리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형과 비슷한 처지의 재우 삼촌이, 형을 대신해서 사회적으로 인정 받은 것만 같아 위로가 됐다.


경찰서를 다녀온 직후, 행선은 재우 삼촌을 달래려고 와플 기계를 사주고, 캠핑을 가기로 약속한다. 우리 가족도 형에게 지하철에서 더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는 대신에, 좋아하는 야구 선수의 유니폼을 사줬던 기억이 난다. 재우 삼촌의 미소를 보며 형의 미소가 떠올라 또 한번 울컥하고 말았다.


물론 드라마 속 자폐인의 묘사엔 한계점도 많다. 여타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재우 삼촌에게 수갑을 채우고 유치장에 구금한 경찰의 행위는 분명히 반인권적이다. 또한 자폐인과 그 가족은 언제나 장애를 ‘죄송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반복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누나 행선의 친구인 영주와 재우 삼촌의 로맨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우리형이 겪는 일상이 미디어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콘텐츠에 묘사되는 것 자체에 위안을 얻는, 나같은 자폐인 가족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상황을 알면, 자폐인이라는 약자를 배려해 줄 수 있는 수많은 '권진경씨'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들은 단지 자폐인에 대해 잘 모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형에 대한 이야기를 틈틈이 써나갈 생각이다. 내가 재우 삼촌에서 형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었듯이, 형의 이야기를 보고 누군가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사회의 '권진경씨'들에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희, <일타스캔들>의 재우 삼촌 말고도 더 많은 자폐인 이야기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우리형과 같은 자폐인들이 드라마 속 재우 삼촌처럼, 사회 속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연히 인정 받길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