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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린종희 Nov 17. 2023

雜說 (야매소설)

雪中歸驢圖 5

6.

 안다는 것은 때로 알지 못함이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도상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정신을 읽는 것이다. 작가의 정신이란 곧 그의 세계관이자 철학 아닌가. 연담에 있어서 그림세계는 더욱 그렇다. 박 진사가  <나귀를 탄 사람> 두 점을 나란히 붙이자 여기저기서 무릎 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 어떤가. 보이는가. 무엇이 보이는가.      


박 진사가 김 생원을 돌아보았다     


- 술이 취해 기분 좋게 힘을 뺀 상태와, 기분 좋은 상태를 넘어 완전히 취해버린 상태가 보이네.     


김 생원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답을 했다.     


-술과 내가 하나 된 순간의 몰입, 그것은 그림과 내가 하나가 된 순간이지. 연담으로서 술을 마실 때와, 술이 연담을 마신 경우라고 할까. 그림이 완성되기 전 완취하여 그림을 돌연 중단한 듯이 보이지만 ... 실은 두 그림이 모두 완성작이네. 이미 연담의 붓끝을 떠났기 때문이지. 항간에서는 연담의 그림을 두고 어떤 것은 태작이고 또 어떤 것은 걸작이라고 하네만 내가 보기엔 연담의 그림은 모두 걸작이네.     


- 어찌 그런가     


-그림이란 화원의 세계를 떠나와 관객으로 파고들 때 비로소 완성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림 한 점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그림과 관객이 나누는 대화 아닌가. 한 번 보는 것으로 접어두는 그림이야 말로 태작이지. 그러나 연담의 그림은 끝없는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는가. 오늘 우리도 두어 식경(息耕) 지나도록 연담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연담의 그림은 성공한 것이네.  알 듯 모를 듯 그러나 자꾸 눈길을 끄는 그림이야 말로 진짜 그림 아니겠는가.


 박 진사의 말처럼 연담의 그림은 볼수록 묘하게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림 앞에서 저마다 한 마디씩 난을 치듯 거들었다.


 마당을 분주히 오가며 심부름하는 아이의 발걸음도 지금은 쉬어가는지 주모의 도마질소리도 멈추었다. 이방 저 방에서 새어 나오는 기름진 이야기 사이로 해거름이 내려앉는 중이다.  박 진사는 그림을 주섬주섬 챙겼다. 완취한 <나귀를 탄 사람>은 김 생원의 사랑채로 돌아갈 것이다. 그림은 처음 그랬듯이 창호지에 두 겹 이고 푸른 보자기에 다시 싸여 소장자의 품에 안겼다. 못내 아쉬운 듯 사람들의 눈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연담의 그림 이야기를 더 듣고 싶네만... 어쩐다 날은 저물고... 이러면 어떤가. 수일 내 다시 자리하여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듣고 싶네. 연담이 통신사로 갔던 이야기며, 무엇이든... 사소한 일이라도 모든 것이 궁금허이... 이리도 궁금증을 안겼으니 김 생원, 박 진사 두 분이 책임지시게     


정 생원이 떼를 쓰듯 으름장을 놓았다.      


-술은 내가 얼마든지 내겠네. 이야기 값으로 말일세. 나는 그림 속에 그토록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네. 어떤가 박 진사...     


 소매를 잡아끄는 정 생원의 눈빛이 소년처럼 반짝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가를 즐긴답시고 사군자를 치긴 했지만 점잖빼는 수묵의 세계에 흥미를 잃은 터에 만난 연담의 그림은 어떤 갈증을 채워주는 단비처럼 반가웠다. 뭔가 틀을 벗어나고픈 생각이 오래도록 정 생원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걸음의 방향을 둘 곳 없는 오리무중의 고립 속으로 스스로 걸어가는 듯 방황하고 있었다. 양반의 체면으로 드러내선 안 될 어떤 것들이 소리 없이 옭아매고 있어 바닥을 알 수 없는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허우적거릴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막막하던 차에 파격을 만났으니 그것은 연담의 파격이 아니라 곧 정 진사 자신이 갇힌 어떤 벽을 깨부순 듯 강렬한 흔들림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 김 생원, 그대는 그렇지 아니한가... 나는 그대의 이야기도 듣고 싶소.      


정 생원이 간절함을 담아 김 생원에게 청했다     


- 박 진사께서 허락하신다면야... 술은 나도 내겠소    

 

김 생원의 말에 그만 박 진사도 약속을 하고 말았다.      


- 하하하, 그만하시게들... 내 그리 하리다. 술이야 누가 내면 어떻소. 술은 도리어 내가 낼 판이오. 이토록 내 이야기를 귀하게 들어주는 이는 그대들이  처음이오.     

 

  주막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이 참으로 훈훈하다. 비록 주류 화단에 들지는 못 했다 하더라도 연담의 그림을 무척 좋아했던 박 진사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터놓고 스스럼없이 연담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화단의 이단아로 취급당하는 연담을 수면으로 드러내는 일이 자칫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할 것 같아 혼자서만 걸어두고 완상 했다.      


 오늘처럼 느닷없이 이루어진 자리는 어떤 격식이 없어 좋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 다양한 생각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깊은 곳에 쟁여둔 말의 바닥을 들추어보는 뜻밖의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김 생원의 안목이 상당하다는 것을 익히 풍문으로 들었다. 언젠가는 몇 날에 걸쳐서라도 그의 안목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러니 이 같은 자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제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오늘 이 길은 어제와 분명 다르다. 얼굴에 부서지는 저녁 햇살의 감촉이 다르며 바람의 결도 다르다. 그것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은 낯선 것이다. 낯설게 보인다는 것은 처음이라는 경험 아닌가. 경험의 기억이 생각이라면, 그 생각이란 것은 편견을 만들기 십상이다. 그런 까닭으로 아집이 생기는 것이다.      


 날마다 새 길을 걸으면서도, 매 순간 처음을 마주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스스로의 편견에 갇혀 있었다는 말이다. 결국 새롭게 보인다는 것, 아니 낯설게 본다는 것은 의식이 살아 꿈틀대는 것이다. 도화서 화원으로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연담이 새삼 경탄으로 다가왔다. 유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달마를 그려대는 그의 고집도, 도교의 신선을 그리는 그의 정신세계도 모두모두 경이롭다.


 내일은 퇴청하는 그를 만나러 가리라. 그림 속의 연담 아닌 그림 밖의 연담을 만나고 오리라. 술 한동이쯤 거뜬히 지고 그의 사립문 앞에서 퇴청하는 그를 무작정 기다려보리라. 오가는 말이 없어도 좋으리니. 술동이를 끼고 앉아 어둠에 싸여가는 세상처럼 그의 취기에 말없이 젖어보리라.    

 

  골목에 끌리는 저녁 그림자가 붉다. 처마 밑엔 시래기가 말라가고, 굴뚝을 빠져나온 연기의 구수함이 시장기를 재촉한다. 도포자락을 툭툭 치며 달아나는 바람마저 달다. 그래 살아있다는 것은 이렇게 걸어가는 것이지. 그림을 안고 걷는 박진사의 걸음은 이미 내일에 닿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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