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태양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붉은 선은 일본 제국군의 확장을 은유하며,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할 때 군사적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전후 일본 헌법은 군사적 전쟁 수행을 금지했지만, 자위대의 깃발로서 욱일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문제는 그 상징이 단절되지 못한 채 일상적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스포츠 현장에서의 논란은 대표적 사례다. 2019년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IOC에 욱일기 사용 금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IOC는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고, 전면 금지는 하지 않았다. 결국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일본 관중의 욱일기 응원이 목격되었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 국제 축구에서는 FIFA가 욱일기 응원을 금지하고 실제 제재 사례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IOC의 소극적 태도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면 왜 일본 사회는 욱일기를 단절하지 못했을까. 첫째, 전후 미군정과 일본 정부는 제국주의 상징의 일부를 ‘문화적 전통’으로 포장하는 전략을 취했다. 국기 ‘히노마루’와 국가 ‘기미가요’가 그대로 유지된 것처럼, 욱일기도 ‘전통적 해양 깃발’로 재해석되었다. 둘째, 냉전 구도 속에서 일본은 서방의 전략적 동맹국으로 편입되면서 과거 청산 압력이 독일에 비해 훨씬 약했다. 셋째, 경제 성장과 함께 욱일기는 기업 광고, 스포츠 응원, 대중문화에서 은연중 소비되었고, 일본 내부에서는 그 부정적 역사성을 문제 삼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 이 세 가지 요인이 겹쳐지며 단절의 기회가 상실되었다.
이 지점에서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스와스티카)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스와스티카는 원래 고대 인도, 불교, 힌두교 문화권에서 행운·생명·번영을 상징하는 긍정적 도안이었다. 동아시아 불교 사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길상 문양이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이를 인종주의적·군국주의적 상징으로 전용했다. 그 순간부터 스와스티카는 본래의 문화적 맥락을 압도당했고, 20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철저히 금지된 정치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독일과 다수의 유럽 국가는 법으로 하켄크로이츠 사용을 금지하며, 종교적 문맥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상징의 본래 뿌리보다 역사적 사용 맥락이 훨씬 강력하게 의미를 규정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욱일기 또한 같은 궤적에서 읽혀야 한다.
문제는 욱일기가 대중문화 속에서 은연중 소비된다는 점이다. 일본 내부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애니메이션, 패션, 음악 무대 등에서 시각적 효과로 차용되며,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하는 대중이나 아티스트들이 무심코 사용한다. 이는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문화적 매혹과 결합하면서, 욱일기의 전범적 성격을 희석시키고 무해한 전통 문양처럼 소비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피해국 국민들에게는 상처를 되새기게 하고, 잘 알지 못하는 타국 대중에게는 왜곡된 인식을 심는다.
국제법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욱일기 문제는 단순한 문화 논쟁이 아니다. 국제인권규약(ICCPR) 제20조는 “전쟁 선동이나 차별·적대·폭력의 선동이 되는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나치 상징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유럽 국가들의 입법 역시 이 조항을 근거로 한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나치 상징의 전시가 공공질서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보고 제한을 정당화했다. 같은 맥락에서 욱일기 또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던 상징이라는 점에서 국제규범상 규제 가능성이 충분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더라도,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혐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상징은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약 일본이 전후 체제에서 욱일기를 과감히 단절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이 나치 상징과의 단절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했듯, 일본 또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욱일기는 여전히 군대와 스포츠 경기장, 상업적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단절의 실패이자, 과거와 현재가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일본이 욱일기를 단절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 전체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내부에도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가 존재하며, 이는 중요한 균형점을 제공한다.
일본의 역사학자와 평화운동가들은 욱일기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상징이라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특히 전후 세대 연구자들은 욱일기를 단순히 ‘전통 문양’으로 치환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고, 독일의 나치 상징 단절 사례와 비교하며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일부 예술가와 뮤지션은 공연이나 작품에서 욱일기의 사용을 거부하거나, 그 위험성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시민사회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일본 내 일부 인권단체와 반전단체는 국제 스포츠 경기나 대중문화 행사에서 욱일기의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문제 제기 역시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한일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국제기구에 진정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흐름은 비록 일본 사회 주류 여론을 바꾸기에는 아직 미약하지만, 내부의 균열과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을 함께 보아야 일본 사회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일부 보수세력은 욱일기를 ‘전통’으로 포장하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이에 이견을 제기하는 주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욱일기 문제는 단순히 "한국 대 일본"이라는 양국 대립 구도로만 환원될 수 없다. 이는 일본 사회 내부의 민주주의적 논쟁이기도 하며, 피해국과 국제사회가 그 논의를 확산시키도록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제야말로 단절해야 한다.
욱일기를 단순히 전통 문양으로 감싸는 것은 역사적 피해를 부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FIFA와 같은 국제 규범에 맞춰 사용을 제한하고, 군사적으로는 전범 상징을 대체할 새로운 문양을 채택해야 한다. 상업 영역에서도 기업의 자율 규제를 유도해, 욱일기의 상품화가 중단되도록 해야 한다. 국제사회 역시 표현의 자유와 인권 보장의 균형이라는 국제법적 원칙을 근거로, 욱일기 사용에 대해 보다 명확한 제한을 요구해야 한다.
욱일기는 더 이상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 무대와 대중문화 속에서 재등장하며 갈등을 재생산한다. 과거와 현재를 단절하지 못한 결과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단절할 때다. 일본이 스스로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는 규범과 제도를 통해 단절을 강제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