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오아시스

나는 갔어야 했다.

by 우주사슴


나는 오아시스를 갔어야 했다. 그 남아 있는 감정으로 이 글을 남긴다.


사실 나는 그들을 여러 번 봤다. 2006년, 2009년의 투어, 그리고 그 이후 노엘과 리암의 솔로 공연까지. 2012년에는 스톤로지즈의 무대를 보며 리암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미 많은 무대와 음악을 경험했기에, 2025년 재결합 공연 소식은 처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충분히 본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냉정함이다.


동시에 나는 수많은 밴드를 즐겨 듣는다. 오아시스는 분명 나의 삶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밴드이긴 하나, 그 많은 밴드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공연 결정 당시에는 ‘이번엔 그냥 보내자’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 구석이 서서히 흔들렸다.


서울 을지로의 오아시스 팝업스토어 소식을 접했다. 가보려고 했더니, 스토어 입장에도 티켓이 필요하며, 막상 가려고 하니 스토어 입장마저 매진이었다. 운이 좋게도 팝업 스토어 첫날인 16일 19시 입장 티켓을 확보하여 입장하였다.



원래라면 오아시스 아디다스 트랙탑을 사고 싶었으나, 첫날임에도 그 모델은 품절이 되어, 3선 래글런 아이보리 블랙 셔츠를 구매하였다. 물론 이것도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그 희소성에 나는 설득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라이브에 가려던 생각은 없었다. 구매 당시에도 팬의 마음으로써 불필요한 것이지만, 희소한 것이므로 샀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단 한 번뿐인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 안에서 강렬하게 자리 잡아갔다.

문제는 21일 당일 나는 지방출장이라는 점이다. 오아시스 일정을 안배하였다면, 그날을 피해 출장일정을 잡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그 당시에는 갈 생각이 없었다.


팝업을 다녀오고 나서 지속적으로 티켓판매 게시글을 모니터링했다. 수요가 공급보다 엄청 많았다. 프리미엄을 주어야겠다는 사실을 철저히 자각했다. 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현장 가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도 염두했다. 실제로 갑자기 못 오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니까, 그럴 경우 가장 표를 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공연장에 일단 가는 것이다. 이것은 20년간 공연을 다녀온 나에게는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다만,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 부담이었고, 고양종합운동장까지의 여정은 말 그대로 체력과 시간을 모두 시험하는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전날부터 당일까지 모든 가능성을 계산했다. 지속적으로 표 흐름을 살폈다.


업무시간을 조정하고, 서울행 KTX 기차를 두 번이나 예매했다가 결국 취소했다. 첫 번째는 압도적인 수요 때문이다. 내가 그 수요 중에 하나가 되어 티켓을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쉬워 다시 열차표를 확인했다. 서울 가는 KTX 가 매진이었다. 기차표 마저 매진이었기에, 더욱더 조바심이 났다. KTX 티켓조차 여러 번 시도하여 겨우 예매했다. 마지막 현실적인 고민과 동시에 시간계산, 비용계산, 다음 날 일정계산 등을 여러 차례 해본 결과 다시 취소했다.


그동안 쌓아온 공연 경험과 시장 상황을 종합하면, 그날 현장에서 표를 구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압도적으로 사려는 사람이 많았고, 거래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논리적 판단으로 보면, 가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성적 판단이 항상 삶에서 최선은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표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 공간으로 향하고 싶다는 욕망이 여전히 존재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공연장 밖에서도 음악은 들렸을 것이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운동장 주변에 모여, 웃고 울고 노래하며 서로의 경험을 나눴을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마음은 끝없이 흔들렸다.

직접 보진 못하더라도, 직접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캔 맥주 한잔을 하고, 팝업스토어에서 산 래글런 티셔츠를 입으며, 못 들어간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끼며, 대동단결 할 수 있음을 분명히 나는 알고 있었다.


GTX와 KTX의 귀가 시간까지 확인하며, 모든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고양운동장이 처음이 아니기에 인파의 흐름이 충분히 시뮬레이션되었고, 상황에 맞춰 빠르게 움직일 수야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비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공연이 끝나고 바로, 인스타에는 공연 영상과 사진이 쏟아졌다. 리암의 강렬한 목소리, 노엘의 기타 선율, 그리고 특히 한국 관객들의 환호. 그리고 '밖탠딩'이라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


이번 주말에는 양일간 도쿄에서 라이브가 예정되어 있지만, 한국만이 가진 현장의 바이브와 에너지는 비교할 수 없다. 관객과 무대, 장소가 만들어내는 한국의 독특한 순간은 해외 공연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한다.


그 순간, 냉정했던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완벽한 조건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탠딩이어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티켓 발송 전에 지인이 정가로 넘기겠다는 지정석 티켓을 거절했다.


그때의 나는 자기 기준 안에서만 움직였고, 그 기준이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

후회는 단순히 공연을 놓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움직였어야 했다”는 자각에서 오는 깊은 후회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한 판단이었을 수 있으나, 감정적으로는 패배한 선택이었다. 내가 원하는 상황을 기다리며 아무 경험도 얻지 못한, 그 순간의 공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단순하다. 어떤 순간은 실패하더라도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 현장의 공기, 그 소리, 그 진동은 영상이나 사진으로 대체될 수 없다. 중요한 순간은 언제나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찾아온다. 안전과 확률을 믿고 멈춰 선 삶은, 결국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그날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그날의 기억은 후회로 남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후회는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다음번에는 계산보다 감각을 따라야 한다. 실패할지라도 현장에 있어야 한다. 완벽을 기다리느라 놓친 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움직이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는 갔어야 했다.

그 말속에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다시는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 완벽한 논리보다 불완전한 경험이 더 오래 남는다. 그날 나는 이성의 언어로 살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 감정의 잔향 속에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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