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de to Black. Metallica

음악이 인생을 담고 있는게 아니다. 내가 인생을 담는것이다.

by 우주사슴

Fade to Black의 아웃트로를 들을 때는 나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기타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잔향만이 공간을 채우다 결국 완전한 침묵으로 사라지는 몇 분 동안, 나는 상실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진다는 냉정한 깨달음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이 음악은 내게 인생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이 곡을 만든 제임스 헷필드와 커크 해밋, 클리프 버튼, 라스 울리히은 당시 20대 초반이였다.


그들이 겪은 인생의 총량은 제한적이다. 경험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인생의 깊이를 말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수많은 청자들에게 인생 그 자체처럼 다가온다. 이는 예술이 경험의 직접적 재현이 아니라 상징화와 형식화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젊은 음악가들은 자신이 겪지 못한 깊이를 직접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보편적 정서를 음악적 구조 안에 배치하고, 그 구조가 청자의 경험과 만나도록 설계한다.


Fade to Black의 아웃트로는 메인리프가 계속 반복되며, 기타솔로가 연주된다. 그리고 드럼 연주가 격정적으로 쌓여가며, 기타솔로도 빨라지고 촘촘해진다. 그 와중에 볼륨은 서서히 줄어들고, 결국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다. 마지막에는 완전한 침묵이 온다. 이 구조는 삶의 소멸 과정과 닮아 있다. 인간의 삶도 결국 이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다나는 순간이 오지 않는가. 격렬했던 순간들이 지나가고, 점점 더 고요해지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음악이 삶을 닮았다고 해서 음악가가 삶의 깊이를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음악은 텅 빈 그릇과 같다.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는 청자의 몫이다. 스물셋의 제임스 헷필드는 자신이 만든 음악이 청자에게 어떤 의미로 들릴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상실감과 고독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음악적 형식 안에 배치했고, 그 형식은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구조를 제공했다. 대부분의 음악가가 대표곡을 이십 대에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음악가의 작품이 경험이 풍부한 청자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예술이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경험의 상징화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Fade to Black에서 들리는 것은 제임스 헷필드의 인생이 아니라, 그가 만든 형식 속에 투영된 청자 자신의 인생이다. 점점 작아지는 기타 소리, 사라지는 잔향, 그리고 침묵. 이 구조가 우리에게 인생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그 안에 우리 자신의 시간과 상실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음악에서 느끼는 깊이는 음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우리 사이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생성된다. 예술가는 그 관계가 일어날 수 있는 형식을 만들 뿐이다. 우리는 그 형식 속에서 우리의 삶을 읽고, 그렇게 읽힌 삶을 통해 음악을 이해한다. Fade to Black의 아웃트로가 내게 인생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 음악이 인생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음악 속에 나의 인생을 담았기 때문이다.


Metallica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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