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얼려진 오아시스가 다시금 세상에 나오다.
오아시스의 해체는 단순한 밴드의 종말이 아니라 이름 자체의 봉인이었다. 노엘과 리암은 끝내 밴드 이름을 개인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법적·상징적·상업적·심리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였다. 법적으로 “Oasis”라는 이름과 관련된 상표권과 저작권 문제는 복잡했다.
노엘이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지만, 밴드명과 관련된 권리 구조는 공동 자산적 성격을 띠고 있었고, 단독 사용은 논란이나 법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었다. 실제 음악사에서도 밴드 이름을 둘러싼 분쟁 사례는 적지 않다.
예를 들어, “The Beach Boys”의 마이크 러브와 브라이언 윌슨 간 오랜 사용권 분쟁, “Pink Floyd”의 로저 워터스 탈퇴 후 이름 사용 문제 등은 이름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법적·재정적 부담을 보여준다.
상징적 측면에서도 이름은 밴드 전체의 역사와 창작물을 함축한 브랜드였다. 어느 한쪽이 이름을 쓰면 ‘원조냐 짝퉁이냐’라는 비교가 불가피했고, 솔로 활동은 과거 그림자 속에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름을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두 사람 모두 독자적 음악적 행보를 보호할 수 있었다.
상업적·전략적 측면에서 오아시스 이름을 얼려둔 것은 재결합 서사를 극대화하는 장치였다. 팬들에게 ‘언젠가 열릴 금고’라는 기대감을 남기면서, 솔로 활동을 통해 각자의 음악적 색을 확립하고 전설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았다.
해체 후 노엘은 High Flying Birds라는 솔로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적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리암은 Beady Eye와 솔로 활동을 이어갔지만, 과거 오아시스 곡들을 지속적으로 공연하며 일부 팬층에게는 과거에 의존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리암의 독자적 행보는 노엘보다는 상대적으로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측면이 크다.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결정적이었다.
각각의 독자적 행보가 밴드의 전설을 희석시키지 않고, 재결합 서사에 긴장과 기대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다만, 당시 재결합 가능성은 팬들의 기대에 기반한 해석에 가까웠으며, 당사자들의 갈등과 성격적 요인을 고려하면 현실적 확률은 제한적이었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은 얼려진 전설이자 열리지 않은 금고로 남았다. 노엘과 리암은 그 금고를 열지 않은 채, 독자적 길을 걸으며 각자의 서사를 쌓았다. 솔로 활동 속에서 드러나는 각자의 음악적 선택이 봉인된 이름의 힘과 맞물리며, 오아시스라는 전설을 현재형으로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으로 유추해 볼때 이것을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결국 이름을 쓰지 않은 선택은 법적 제약, 상징적 무게, 상업적 전략, 심리적 요인이 맞물린 복합적 결정이었다. 이를 통해 오아시스는 과거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재형 전설로 살아 있으며, 각자의 솔로 행보와 맞물려 재결합 서사의 힘을 극대화하는 존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