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후 ~~
Song 2 이전의 Blur
Blur는 90년대 초반 브릿팝의 대표주자였다. ‘Parklife’ 같은 앨범으로 영국적 일상과 계급적 풍경을 위트 있게 해석하며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그들의 음악은 세련되고 관찰자적이며, 종종 사회적 풍자를 담았다. Damon Albarn의 영리한 가사와 브릿팝 특유의 멜로디 감각은 Blur를 단순한 록밴드가 아니라 9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적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성공은 한편으로는 한정적이었다. 그들은 ‘영국적인 것’을 상품화하며 차별화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든 틀 안에 갇혔다. 비평적 시선은 유지했지만 음악적 실험은 점점 안전해졌고, 밴드 내부에서도 피로와 긴장감이 쌓였다.
Self-titled 앨범 『Blur』
이런 권태와 위기감은 1997년의 셀프 타이틀 앨범 『Blur』에서 폭발한다. 이 앨범은 Blur가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해체하려는 시도였다. 세련된 브릿팝 사운드 대신, 미국 인디록과 로파이, 거친 기타 톤을 받아들였다. 앨범은 Damon Albarn이 영국적 풍자를 포기하고 더 개인적이고 불안정한 정서를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Blur는 자신들이 만든 ‘영국적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Song 2의 등장 – 날것의 미학
“Song 2”는 셀프타이틀 앨범의 핵심 선언이었다. 제목부터 ‘노래 2’라는 무심한 이름을 붙였다. 이 앨범의 두번째 노래였기 때문이다. 2분 남짓한 러닝타임, “Woo-hoo!”라는 원시적 외침, 귀를 찢는 거친 디스토션 기타가 특징이다. 곡은 록의 본질적 속성을 증폭시키며, 동시에 록의 규칙을 존중하고 깨부순다.
사운드 면에서, 기타리스트 Graham Coxon은 Fender Telecaster 기타와 함께 Pro Co RAT 디스토션 페달을 사용해 강렬하고 과포화된 왜곡음을 만들었다. 앰프로는 전통적인 Marshall Plexi를 활용해 투박하면서도 힘 있는 톤을 구현했다. 베이스 기타는 디스토션을 겹겹이 쌓아 무게감 있는 저음을 더했으며, 드럼은 단순한 8비트 펄스로 곡의 긴장감과 속도를 유지했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Song 2”만의 거칠고 날것의 사운드를 완성했다.
Blur는 의도적으로 이런 원초적인 소리를 통해 ‘록이란 결국 이렇게 단순하고 직설적인 것’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존의 세련된 브릿팝 공식을 폭발적으로 해체하며, 록의 본능에 귀 기울였다.
자기해체의 의미
“Song 2”는 Blur의 자기비판이자 자기해체였다. 그들은 ‘영국적’이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고, 미국식 개러지와 펑크적 거침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미국 시장을 겨냥한 상업적 계산이라는 비판까지 역설적으로 끌어안았다. 이 곡에서 Blur는 록의 상업적 관습을 풍자하면서도, 그 관습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는 자기모순을 수용하는 용기였다. 스스로의 이미지를 부수고 새로운 자유를 모색했다. 록은 규범을 깨는 예술이기에, Blur는 자기부정을 통해 록의 본질을 갱신했다.
대성공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기해체적 실험은 Blur 최대의 세계적 히트가 되었다. “Song 2”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광고와 스포츠 이벤트 단골 BGM이 되었다. Blur가 스스로 조롱하며 던진 거칠고 직설적인 록이, 오히려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쾌감을 제공했다.
이것이 “Song 2”의 역설이다. Blur는 자신들의 성공 공식을 분해하고 장르적 문법을 부쉈지만, 그 해체의 에너지가 새로운 성공의 문을 열었다. 스스로를 해채하였기에 더 자유로워졌고, 그 자유가 더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결국 “Song 2”는 Blur의 위기와 실험, 조롱과 자백, 해체와 재탄생이 뒤섞인 결과다. 록의 저항과 상업성의 모순을 껴안으면서도, 그것을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형태로 드러낸 증거다. 그렇기에 지금도 “Song 2”는 록의 본능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하는 함성처럼 남아 있다.
여담
1997년의 셀프 타이틀 앨범 『Blur』가 발매되고 나서, 몇년 후 기존에 발매했던 블러의 기존 브릿팝 앨범들이 국내에 라이센스되어 판매되기 시작했다. 난 그 당시 너무 반가워 모든 라이센스 앨범을 구매하였다.
그 당시는 직수입 음반 구하기가 어려웠던, 즉 인터넷 쇼핑이라는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1997년 10월 대망의 블러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 공연이 성사되었다.
글로벌 인지도의 블러였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아주 조촐한 라이브였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한국에 올법도 하거늘 올 기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