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버블 경제 2부 - 개인, 기업, 정부, 사회 모두가 동참한 과열
자산시장의 열광과 사회적 동조
1987년부터 1990년까지의 일본은 경제지표상 호황이었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도쿄 시내의 땅값은 세계 주요 도시를 초월했다. 그러나 이는 실물경제의 내실 있는 확장이라기보다는, 자산시장에 쏠린 유동성과 투기적 기대심리가 만들어낸 비이성적 과열이었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단순한 투자처를 넘어,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미래 안정성의 상징으로 작동했다. 사람들은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매수하고, 매수하는 사람이 많아지기에 가격이 또 오르는 자기강화 구조 속에 들어갔다. 이는 단순한 ‘시장 과열’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인지적 편향이 빚은 집단적 착각이었다.
개인과 기업, 모두가 참여한 투기의 메커니즘
버블기 일본에서 기업들은 막대한 내부 유보금을 부동산 취득이나 주식 보유에 투입했다. 은행이나 보험사 같은 금융기관뿐 아니라 제조업, 유통업 등 전통 기업들까지도 ‘토지 수익’을 추구하며 시장에 참여했다. 이는 실물 투자보다 빠른 수익을 보장했고, 주주들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개인들도 적극적으로 자산시장에 뛰어들었다. 내 집 마련은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집을 사는 사례도 증가했다. 주식 시장에서는 일반 직장인까지 ‘데이 트레이딩’에 나섰고, 사무직 여성들이 주식 정보를 교환하는 이른바 “주식OL(office lady)” 문화까지 등장했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차입과 레버리지의 확대였다. 금리가 낮고, 대출은 쉬웠으며, 담보 가치(특히 토지)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가 대중화되었다. 이로 인해 시장의 상승폭은 자산 본연의 가치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금융기관과 정부, 거품을 키운 공모적 관계
은행과 제2금융권은 토지를 담보로 무차별적인 대출을 확대했다. 금융기관 내부에서는 자산건전성보다 시장점유율이나 단기 수익이 중시되었고, 대출 기준은 해이해졌다. ‘부동산 담보 대출 → 토지 매입 → 가격 상승 → 더 큰 대출’이라는 순환 구조가 고착되었고, 이는 실물경제와는 별개의 금융 팽창을 의미했다.
일본은행과 정부 역시 이 흐름을 초기에 제어하지 못했다. 금리는 이미 낮았고, 수출 경쟁력 회복이라는 더 큰 국가 목표 앞에서 자산시장 과열은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다. 심지어 세제나 규제조차도 자산 투자를 억제하기보다 묵인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정부는 외형적 경기 호조에 도취되었고, 버블의 ‘신화적 성격’을 분별하려 하지 않았다.
토지불패 신화의 구조적 근거
이 모든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토지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문화적 신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본에서는 토지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권력과 위신, 신뢰의 상징이었다.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토지=권력’이라는 인식은 메이지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고, 전후 고도성장기에는 실제로 부동산 가치가 매년 상승하면서 이 신념은 반복적으로 검증되었다.
정책 구조도 이를 뒷받침했다. 토지 보유세 부담은 낮고, 거래세는 높았으며, 개발은 규제되었다. 이는 ‘갖고만 있어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금융기관은 토지를 최고의 담보로 인식했고, 대출은 이를 근거로 무제한처럼 확대되었다. 미디어는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인물들을 칭송했고, 사회는 ‘집 없는 자는 불안정하다’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경제·정책·문화적 구조가 중첩되면서, 부동산과 주식은 자산이 아니라 ‘안전한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위험회피가 아닌 확신에 기반한 전 국민적 투자 열풍이 일어났고, 버블은 하나의 사회적 신화로 작동했다.
취약성의 내재화와 거품의 역설
이처럼 경제주체 모두가 신념과 이익을 공유하고, 정부조차 이를 견제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자산시장은 더욱 기형화되었다. 그러나 모든 버블은 본질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신념의 경제”다. 수요는 실수요가 아니라 기대 수익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 기대가 꺾이는 순간 시장은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즉, 버블기의 일본은 단순히 지나친 낙관이 지배한 시기가 아니라, 각 주체가 자기 합리화와 집단적 신념 속에서 책임을 분산시키고,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던 ‘공모의 경제’였다.
버블 절정기
버블 절정기의 일본은 개인, 기업, 금융기관, 정부 모두가 하나의 신화 아래 움직였던 특이한 시기였다. 자산가격 상승은 단지 시장의 수익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존재방식과 미래 비전의 일부였고, 바로 그 점이 버블의 폭주를 제어하기 어렵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이 시기의 분석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신념의 경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착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