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는 이름처럼 규모가 작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건물크기가 아닌 인원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음'에서 오는 원대한 것들이 있다. 참 많다.
<공간>
소수의 아이들이 학교 전체를 누빈다. 내 교실을 넓게 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운동장, 강당, 급식소 등 모든 공간이 충분히 넓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체로 잘 달린다. 체력이 좋고 활달하고 어딘가 모르게 자유롭다. 밀도에서 오는 제약이 없기에 아이들이 가진 본래의 생기가 온 공간에 넘실넘실 흐른다.
<관계>
우리 반은 6명이었다. 그러다 4명이 되었다. 작은 학교의 더 작은 교실에선 친구가 참 적다. 고민하던 내게 6학년 아이들이 답을 주었다. 어느 날 6학년 OO이가 우리 반 아이를 업고 교실로 들어와서는 "선생님, 복도에서 장난치고 있길래 업고 왔어요!" 한다.
그날부터 나는 교실문을 열었다. 쉬는 시간이면 전 학년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우리 반엔 소파가 있었고, 놀이 매트와 둥근 테이블이 있었기 때문에 큰 아이들도 수시로 드나들었다. 억지로 맺어줘도 흐지부지 되기 마련인 마니또가 저절로 생겨났다. 어쩌다 보니 우리 반 아이 한 명 한 명 당 주로 돌봐주는 형, 누나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누나 무릎에 앉아 전교생 다모임에 참석하는 아이, 형아가 알려준 6학년 과학실험 도구(젤리형 개구리알)로 실험하는 아이, 동생들 스케이트 신발도 척척 신겨주는 형아들... 그렇게 관계의 원이 넓어지고, 그 속에서 우정뿐만 아니라 형제자매의 정(?) 비슷한 것이 흘렀다.
<존재>
작은 학교에서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건 당연한 일인데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 당연한 사실을 매 순간 챙길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몇 반 몇 번 학생이 아니라 모두가 모두의 이름으로 불린다. 누구랑 누구가 형제자매인지, 집안 사정이 어떤지, 학교 마치면 무엇을 하는지 모두 다 안다. 버스 탑승 보조 도우미 선생님과 어린아이들은 손을 잡고 읍내를 걸어간다. 우리 반 아이들은 도우미 선생님을 할머니라고 부른다. "할머니가 학원에 데려다주셨어요." 우리 반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다.
한 달에 2번 정도 열리는 전교생 다모임, 학교 전체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자리에서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친구들 축하 파티를 연다. 둥근 원으로 둘러선 아이들과 선생님들. 그 원 속에 흐르는 메시지 - 우리는 누구나 소중하고, 나는 축하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기쁨의 메시지가 한 명, 한 명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의 가슴속에 흘려든다.
<원대하고도 아름다운>
나는 작은 학교는 모든 것이 작을 것이라 생각했다. 작은 것에 깃든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가치가 처음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도시의 큰 학교에서 생활하게 된 나는 작은 학교를 떠날 무렵 알았다. 생각하면 눈물이 핑핑 돌게 예쁜 아이들이, 언제나 아이들의 뜀박질을 담아내던 운동장이, 누구나 손잡고 걷는 것이 당연하던 따스함이 그곳엔 항상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그 짧고도 뜨끈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오늘도 작지만 큰 학교에서 작지만 큰 아이들이 깔깔거리길, 오늘도 거침없이 뛰고 있길, 오늘도 버스할머니 손을 잡고 읍내 학원을 가고, 누나 무릎에 앉아 책을 읽고, 언니 등에 업혀 교실로 돌아가길.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그 풍경이 계속 따스하게 빛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