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아홉살, 비운의 통만두 사건

INFJ 할머니의 일상과 추억이야기

by 사각달
학교앞 가장 유명했던 만두 가게의 통만두


* 내 인생 최고의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었던 날 *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이 "이번 학기 반장, 부반장은 누구누구"라고 호명하셨다.


놀랍게도 반장으로 호명된 이름이 '나'였다.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도 선거를 해서 임원들을 뽑는 세상이지만, 그 당시엔 '반장 선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담임 선생님의 전권으로 임명이 되는 그런 시대였다.

( 이제와 생각해 보니 쥐뿔도 없는 게 자존심만 오졌던 내가 반장이 된 건, 그런 내가 걱정스러웠던 엄마의 치맛바람이 살짝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ㅠㅠ)


아홉 살 인생에서 이 날은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던.. 기분이 그냥 너무 좋아져서 하늘까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내 옆으로 모여들었고, 반장턱 내라고 한 마디씩 했다.(ㅋㅋㅋ 그때도 이런 일이 있긴 했답니다.)

반장턱을 안 낸다면 앞으로의 내 인생이 힘들어질 것 같아

아이들과 방과 후 몇 시에 학교 근처의 꽤 유명한 통만두 가게에서 반장턱을 내기로 약속하곤 득달같이 집으로 뛰어가서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사실 이 만두 가게가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내 인생 통틀어 이 집만큼 야들야들하면서 탱탱한 피와 냄새 1도 없는 속이 꽉 찬 동시에 얇실하게 생긴 통만두를 본 적이 없다.


가끔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갈 때마다 읍소해서 꼭 한 판 씩 먹고 집에 왔는데, 요즘말로 '존맛탱구리' 그 잡채였던 거지.

(이때부터 맛을 찾아 헤맨 나.. 그랬네..)


아이들과 만두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내 말에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셨다.


"어쩌자고 애들한테 만두를 사준다고 했어? 아이고.. 정말.. 간도 크지.."

"애들이 먹고 싶댔단 말이야.."

(네가 먹고 싶었겠지..)


엄마는 장고 끝에 돈 만 원을 주셨다. 지금이야 만 원 갖고 반장턱을 어찌 내나 싶겠지만 그 당시엔 통만두 한 판에 1,500원이었다. 만 원이면 애들 다섯 명이 실 컷 먹고도 남았다. 가끔씩 심부름하고 남은 돈 몇 십 원 정도를 챙기는 것도 엄청난 일이었기에, 만원은 진짜 큰돈이었는데도, 그걸 반장턱 낸다고 주신 것이었다.


돈 만 원도 받았겠다 자신감 뿜뿜으로 애들 앞에서 호기롭게 만두 가게에 들어가 통만두 다섯 판을 주문해서 실컷(?) 먹었다. 반장에 뽑히고 아이들과 같이 먹었던 통만두 맛은 내가 이 집에서 먹은 통만두 중 탑 오브 탑급이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이들이랑 오손도손 떠들다가 더 이상 할 얘기가 다 떨어질 때 즈음, 집에 가려고 계산을 하려던 순간 바지 호주머니 안에 있어야 할 만 원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잠바 주머니랑 바지 뒷주머니, 책가방까지 다 뒤졌지만 만 원은 결국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ㅠㅠ


만두 가게 주인아저씨는 "당장 집 전화번호(그 당시엔 집 전화가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음)를 대라"라고 하셨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조용히 집 전화번호를 중얼거렸고, 주인아저씨는 바로 집에 전화를 하셔서 "아이가 돈을 잃어버린 것 같으니 빨리 오셔서 만두값 계산하시고 데려가시라"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다.

공으로 만두를 얻어먹은 아이들은 다들 집에 가야 한다며 돌아갔고, 어린 나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호구처럼 자책감으로 바들바들 떨며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엄마는 사색이 돼서 뛰어 오셨고, 가게 주인아저씨는 단골을 알아보셨다. 엄마는 죄송하다며 만두값을 지불하셨고, 통만두 몇 판까지 더 포장해서 나를 데리고 나오셨다.


예상대로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나는 엄마의 불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너한테 다시는 돈 안 준다. 덜렁이한테 돈을 준 내가 미친년이지.."라는 말로 세상 행복했던 날의 말로는 그렇게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으로 온 가족이 엄마가 사 오신 통만두를 먹었다. 다들 맛있게 먹었지만 난 세상 구슬프게 만두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경우에, 인생에서 뭔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은데, 이후로 뭔가 없어질 때마다 사람이 대범해지는 게 아니라 약간 혼절 상태, 멘털 붕괴의 상태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버릇,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플랜 B를 세우는 습관이 생기게 된 듯하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통만두는 여전히 맛있다는 거!!! 만두는 사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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