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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뮹재 Apr 02. 2022

[대구 삼덕동] 고운식당

편안한 분위기의 일본 가정식 맛집


 직장인들에게 평일의 쉼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번 글은 음식에 대한 품평보단 평일의 쉼 중 발생한 어떠한 사건에 대한 논평에 가까울 것이다. 모처럼 생긴 1주일이라는 온전한 쉼 가운데 사건이 터졌다. 바로 만 7년 동안 동거동락하며 함께한 사랑하는 나의 반려견 '재'가 나의 손을 강하게 문 것이다. 사건의 발단을 이랬다. 남해에서 기분 좋게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 저녁. 복숭아씨가 남해에서 사 온 멸치와 디포리로 야심차게 육수를 내었지만 서툴렀는지 육수가 생각보다 비렸다. 복숭아씨는 실망감을 감춘 채 육수를 내고 남은 멸치와 디포리를 하나씩 재에게 간식 겸 주었고 재가 너무 잘 먹었다. 말 그대로 취향저격이었나 보다. 나는 거실 의자에 앉아 아이패드를 끄적이고 있었는데, 책상 밑으로 재가 앉아서 낑낑되는 걸 인기척으로 느끼고 있었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가끔 그러하듯 재의 긴 주둥이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왜 이렇게 낑낑대노~!"하며 흔들자마자 식욕에 사로잡혀 있던 재가 본능적으로 방해를 거부하기 위해 나의 손을 물어버렸다. 문제는 상처의 정도가 심했다. 이전에도 2-3번 모두 음식과 관련되어 물린 적이 있었는데 상처가 그렇게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손의 피하지방이 노출될 정도였다. 살이 벌어져 피가 많이 나오자 적잖이 당황했는데 순간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분비했는지 고통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복숭아씨는 매우 놀랐다. 우린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순서에 맞춰 기다리니 의료진이 나오셔서 소독을 해주셨다. 한참 더 기다려 파상풍 주사를 맞은 뒤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2-3 바늘 꿰매면 딱 좋을 것 같아 의료진에게 요청을 하니, 개한테 물렸을 때는 2차감염의 위험 때문에 최소 3-4일은 꿰매지 않고 공기에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받았다.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는데 참았다. 2년 전 응급실에 한 달 정도 상주한 적이 있어 생사가 오가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그래서 의료진들의 성의 없고 무심한 답변이 이해가 되었고, 얼른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생각해 바로 집으로 왔다. 그러고 다음날 복숭아씨는 아침 일찍 출근을 했고 문제견 재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필자만 집에 덩그러니 남았다. 일단 각자의 포지션에서 거리를 둔 채 대치를 하였다. 사실 재는 아침에 출근하는 나의 평소 루틴 때문에 아침이면 항상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잔다. 그런 재를 놔둔 채 거실에 나와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이대로 재를 놔두어도 괜찮은 건가. 인간이면 인간을 중점으로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야 되지 않는가. 안락사를 시켜야 되는가. 극닥적인 생각부터 상쾌하게 같이 산책이나 나갈까 가벼운 생각까지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섞였다. 검정과 흰색을 섞으면 회색이 되듯 일단 생각이 중간에서 뒤섞인채 멈췄다. 아무 생각 없이 샤워를 하고 상처를 드레싱 하기 위해 거즈를 떼어 살펴보니 생각보다 살이 많이 벌어졌는데, 염증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마치 날카로운 날에 깊게 베인 듯하였다. 의사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하여 전날 있었던 일들을 말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내가 보내준 상처 사진을 보곤 1-2 바늘만 꿰매면 금방 아물겠다고 알고 있는 외과병원을 한 곳 추천해주어서 자세한 진료를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머리도 드라이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보는데 의사분의 스펙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또 손, 발 외상 전문의이시기에 잘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의사분은 내손을 이리저리 보며 동물한테 물렸을 때 어떤 상처가 생기는지 설명을 자세히 잘 해주셨다. 마치 상병이 신병에게 군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은 지 설명해주듯 불량스러운 자세로 건들거리면서 말을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본인의 실력과 권위를 스스로가 아주 높게 평가하는 듯했다. 나는 불쾌하다기보다 사실 시트콤 같은 상황에 속으로 웃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의사분이 해주시는 설명을 잘 새겨들었다. 의사 본인이 집도한 몇몇 환자의 손을 보여주며,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 염증이 생기면 이렇게 해부를 해서 수술을 해야 된다 하셨다. 사진 속 손은 피부를 완전히 열어 뼈와 혈관, 근육 등의 내부 조직들이 훤히 보였다.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엄청 혐오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사진이었다. 의사분은 나에게 경각심을 새겨 주며 매일 항생제를 맞고 2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고 깁스도 해야 된다는 처방을 해주셨다. 사실 의사분의 처방도 이해가 갔지만 나는 보다 합리적인 처방을 원했다. 의사분 말대로 좋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그걸 과도하게 예방할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이 많이 들었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과잉 치료를 받는 것은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도 부담이었다. 어떻게 얻은 달콤한 '쉼'인데 병원신세만 질 수는 없었다. 무례하게 거절하자니 서로 감정적으로 신경전을 벌일 것 같아 나름 머리를 굴려서 말을 건넸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치료를 받으면 안전하게 완치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네요.. 다만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이미 파상풍 주사도 맞고 항생제를 처방받아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증이 심해져 수술까지 가야 될 가능성과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을 때 자연스럽게 완치될 가능성 이 둘 중 무엇이 더 높은가요?" 그러자 의사분은 당황하지 않고 "이건 단순히 확률이기 때문에 확답을 드릴 수가 없다. 어떻게 될지는 치료하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된다"라고 답을 해주셨다. 나는 속으로 '걸려들었다.' 생각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마지막 질문을 하였다. "확률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렇다면 제 손의 상처의 정도는 자연스럽게 놔둬도 완치될 수 있는 확률이 50%는 초과하나요? 그 정도는 의사 선생님께서 답을 주실 수 있으신 것 같아서 여쭈어 봅니다." 의사분의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을 살짝 느껴졌지만 이내 체념하신 듯 "50%는 넘죠."라며 짧은 대답을 해주셨다. 추가적인 약 처방이나 치료는 받지 않기로 하고 항생제 주사 한방 맞고 상처 소독만 간단히 하고 수납을 하였다. 그럼에도 높은 진료비에 헉! 소리가 났지만 그래도 과잉치료를 미연에 방지해서 만족스러웠다. 이제 제발 아무 탈없이 손이 낫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시간이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다쳤을 때는 억지로라도 잘 먹으면 그게 바로 보약이지 않겠는가. 조용히 식사를 하려고 종종 가는 동네로 향했다. 그 동네를 향한 이유는 딱히 명확하진 않았는데 무의식적으로 의사 친구가 살던 동네였고, 의식적으로 복숭아씨 직장과 가까워 퇴근시간까지 시간을 보내야겠다 생각 들어 결정하였다. 얼마 전부터 돈가스가 먹고 싶었는데 한 번도 가진 않았지만 눈에는 들어왔었던 고운식당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 동네는 몇 년 전만 해도 유명하지 않았는데 한두 개 핫한 식당이 생기더니 유명세를 타고 급속도로 많은 식당과 카페가 생겼다 없어졌다 반복하였다. 비교하자면 서울의 성수동이나 망원동. 확실히 망원동에 더 가까운 느낌이 있는 동네이다. 그러한 격변기를 지켜보았는데 고운식당은 그 격동기 속에서 초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한 되는 다 이유가 있겠지 기대감을 가지고 식당에 들어섰다. 벤다이크브라운 계통의 아주 거뭇한 고동색 우드 인테리어의 식당은 좁아 보이면서도 앉을 공간들이 이곳저곳 많이 있었다. 점심에는 역시 햇살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나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돈가스를 먹을까 했는데 메뉴판을 보니 차슈다마고동이 끌려서 그걸로 하나 주문하였다. 밑반찬은 셀프여서 카운터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밑반찬을 스스로 담아왔다. 단무지와 김치 정도였고 특별한 맛이 있지는 않았다. 손님이 나 혼자뿐이어서 그런지 주문한 음식이 금방 나왔다.



 보자마자 크기에 살짝 놀랐다. 그릇이 생각보다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일본음식의 특성상 양이 작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크기였냐면 사진과 같이 일반 종이컵 크기의 물컵의 높이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먹고 나서 보니 착시효과였다. 양이 상당히 되었기 때문이다. 공깃밥을 가득 채운 정도의 밥의 양에 그만큼 차슈와 고명이 수북히 쌓아 올려져 있었다. 그릇만 보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되었나 보다.



차슈다마고동 12,000원


 그릇에 넘치도록 고명들이 쌓아 올려져있어 조심스럽게 먹으려고 했는데 아뿔싸 바보처럼 다친 손이 그제야 떠올랐다. 젓가락질을 하려니 딱 상처부위에 젓가락이 걸쳐져서 도저히 젓가락질을 할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서투르게 젓가락질을 해보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인분에게 큰 그릇을 달라고 하니 면기로 보이는 큼직한 그릇을 주셔서 거기다가 통째로 부어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필자는 원래 일본 덮밥을 젓가락으로 고명과 밥을 따로 먹는데 환자에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비빔밥 비비듯 야무지게 비벼서 숟가락으로 퍽퍽 퍼먹었다. 밥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그에 비해서 간이 강해 오히려 밥과 고명을 다 비벼도 약간 짜웠다. 그리고 간장소스에 단맛이 아주 강하게 느껴져 백종원 스타일의 상업적으로 맛있을 수밖에 없는 짠단스러운 음식이구나 느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될 수 있다. 그 점을 주인장 분께서 캐치하셨는지 그 단점을 보완할 해답으로 고추냉이를 한 덩어리 듬뿍 올려 주신 것 같다. 부담스러운 짜고 단맛을 고추냉이가 그만!이라고 외치며 특유의 알싸하면서 씁쓸한 맛으로 잘 잡아주었다. 나중에는 고추냉이를 좀 더 넣을까 고민이 들기도 했는데 더 이상 넣으면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코가 뻥뻥 뚫릴 것 같아 포기했다. 처음 사장님께서 올려주신 양이 딱 적당량인 것 같다. 계란은 반숙이었는데 노린자는 거의 익지 않았다. 터트려서 잘 비비니 참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고소한 풍미와 입에 착착 달라붙은 식감까지 유도하였다. 차슈는 강한 화력으로 조리했는지 불향이 느껴졌고 그 불향 덕분에 훈제 고기의 풍미가 기분 좋게 입속에서 풍겼다. 한 끼 식사로는 다소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든든한 식사가 되었다. 재방문하기에는 아무래도 가격 때문에 고심해봐야 할 것 같다. 식당이 최소 4년은 된 것 같은데 여태껏 잘 운영된 것은 사장님의 요리에 대한 정성과 열정이 있었기에 그러지 않을까 싶다. 빈틈없는 몸 쪽 깊숙이 꽉 찬 맛에 실망하는 사람은 적을 것 같은 식당이었다.


 사실 점심을 먹으며 맛보다는 재 생각을 많이 하였다. 먹다 보니 생각이 희미하게 사라지긴 했지만. 결론은 비록 재가 주인인 나를 물었지만 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물고 싶어서 물었을 수도 있지만 오로지 짐승의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행동이 본능적, 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나 싶다. 기본적으로 내가 동물에게 대하는 자세는 인간의 입장이 아닌 짐승의 입장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맛있는 멸치를 먹기 위해 예민해져 있는 상태인데 자신의 주둥이를 잡고 흔드니 화가 나고 짜증 나서 물었다라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오답인 것 같다. 재도 물고 나서는 순간 당황했을 것이다. 짐승이 매 순간순간 느끼는 체감에 반응하듯 짐승을 대할 때 사람도 마찬가지로 눈높이를 맞춰 시간의 기준을 매 순간으로 줄여서 적용해야 되는 것 같다. 재가 물었을 때 그 순간 화가 나고 당황했지만 그 순간은 이미 지났으니 죄를 묻는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재가 복숭아씨나 타인을 물었다면 그건 사회적인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될 것이다. 하지만 나를 물었기 때문에 사회적 관점은 배제하고 단순히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가자마자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재의 모습에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며 이런저런 고민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번 사건으로 배운 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 같다. 자아성찰을 했다고 해야 할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독자분들에게 글로 낱낱이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기회로 알게 된 나의 모습을 스스로 잘 간직해야겠다. 나에게 일주간의 쉼이란 내 자신을 더 자세히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싸우지 마세요. 싸우더라도 언젠간 꼭 화해합시다


우리 개는 물어요.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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