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메커니즘(행복사용설명서) 만들기 위한 첫 시작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초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4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길에 서있다.
예전에는 개성을 그렇게 중시했는데 지금은 평범함을 최고 미덕으로 삼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그렇게 바뀌어 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유년기와 학창 시절 나는 무언가를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오지도 않았고, 크게 튀지도 그렇다고 못나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의 삶을 되돌아보면 어찌 보면 맹맹한 국물과도 같다. 특별히 짜지도, 맵지도 않은 자극적이지 않아 기억에 그렇게 남지 않지만 그렇다고 꼭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그런 평범한 기억들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딱히 없던 시기였다. 시험이 있으면 시험공부를 하고, 형제와 사이좋게 지내라 하면 사이좋게 지내고, 부모님 말씀도 곧잘 듣는 그리고 몸이 아파 죽을지언정 결석만큼은 꼭 하지 말아야 하는 그런 학창 시절이었다. 병원에 입원할 만큼 큰 병이나 사고도 딱히 없었고 그 덕분에 12년을 지각 한번 결석 한번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자아가 형성되기까지 남들보다 오랜 기간이 걸렸던 거 같기도 하다.
당시는 내가 입을 옷하나 신발하나 제대로 고르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자아가 형성되고 하고 싶은 일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교 입학 이후 법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고 이후서부터다. 이때부터는 집 나간 망아지 마냥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음주를 즐기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학생의 본분은 잊고 거의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술을 마시고 놀러 다니며 그동안 억눌렸던 아니 존재조차 모르고 지내던 자유와 온전히 내 선택만으로 이루어지는 삶을 만끽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도 맺고,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공사장 막노동부터 시작해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학기 중 그리고 방학기간 할 것 없이 내 시간을 놀고, 돈 버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했다.
어느덧 친구들이 하나둘 군대로 떠나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주변 인맥들과의 연락이 조금씩 사라질 시점 나에게 남은 건 취업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학점과 남들보다 한참 늦은 군입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휴학을 하고 놀고 일하는 사이 군대에서 전역 후 하나 둘 취업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이 급작스레 엄습했다.
남들보다 최소 2~3년 늦은 사회진출 그리고 그마저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한없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내 인생에 우연인 건지 아니면 필연이었던 것인지,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2년간 네팔로 해외봉사를 떠나게 되었다.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것이 이때부터 인 것 같다.
인생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채 2년간 정착한 네팔에서의 삶은 행복 그 자체였다. 세계 최빈국중 하나인 네팔의 현지인들과 친구관계를 맺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며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평범하지만 또 한편으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나 스스로가 조금씩 변해갔다.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가 남이 아닌 내가 되고,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한 선택에 후회와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순수 국내 토종파로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연합(UN) 산하기구에 들어가 일해 보기도 하고,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직장을 뛰쳐나와 아프가니스탄에 2년 동안 파견 나가 일하기도 했다.
영국 최고 명문대에 입학허가를 받고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기 위해 기꺼이 포기하기도 하고, 오랜 기간 계약직으로의 미래가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했으며, 지금은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며 안정된 삶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서울의 신축 자가아파트에서의 생활 이전에는 네팔의 한 달 80불짜리의 월세집과 하루에도 폭탄이 몇 번씩 떨어지는 아프가니스탄 분쟁지역의 컨테이너방에서 2년간의 열악한 삶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한때 자산이 마이너스부터 시작해서 20억 원까지 경제 상황별 다양한 삶의 경험은 돈이 없었을 때는 몰랐던 돈의 힘이 어떤 것이지를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경험주의자로써 세계 40여개국 이상을 돌아다녔으며, 현재는 사회 다방면에서 어느정도의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인생의 절반쯤 다다른 이 시점에 과거를 회상해 보면 현시점에서는 어찌 보면 사회통념상 평범해 보이는 삶일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다채로운 경험들이 있었고 그 과정 속 나의 수많은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미래에 희망을 계속해서 볼 수 있는 현재의 내가 있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가 행복을 꿈꾸고 그렇게 살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하는 포인트가 다르고 내 경험과 삶에 대입할 때면 그것이 맞지 않아 가끔씩 혼란스럽기까지 할 때도 있다.
나 또한 오랜 기간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견해만으로는 행복을 정의내리기가 오히려 혼란스러운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동안 느낀 경험과 감정들을 되짚어 보면서, 나 스스로의 행복 메커니즘을 스스로 설계해 보기로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진 이 행복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서 행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왜 그동안 멘토와 전문가들의 얘기가 나와는 맞지 않았던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내가 준비하고 선택하는 일들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해지고 자신이 생겼다.
이후부터는 내가 설계한 행복 메커니즘(행복 사용 설명서)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