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 없이 독일 랭킹 1위 만하임 비즈니스 스쿨에 지원해서 합격하기
10년의 직장생활 동안 나는 한 회사에 엉덩이 붙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여전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데이타/애널리틱 회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시작해서 프로젝트 매니저, 키어카운트 매니저를 지나 현재의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까지 각 2-3년씩을 차근차근히 거쳐오며, 당시에는 휩쓸려다니는 대로 살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운이 좋았고, 이력상으로 "나 좀 노력해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꽤나 성취적인(?) 프로필이 일구어졌다.
자, 이제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 2년차. 장기적으로 나의 커리어 앞길을 생각해보자면 아래 두 가지로 요약되겠는데:
1. 이 회사에서 리더십 롤로 커나가거나
2. 다른(=더 좋은) 회사에서 마케팅/시장분석 쪽에서 전문성을 높이거나
어쨌거나 가만히 있는다고 이루어질만한 목표들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특히 두 번째 옵션의 경우, 내가 커리어 초반부터 시장분석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실제 시장분석 경력은 최근 2년이다. 이 최근의 경력만으로 혹은 지금부터 몇 년을 더 채운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소위 "멋진 회사"들로 이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MBA에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MBA를 통해서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직장인에게 MBA가 모든 정답을 쥐어주는 마법의 열쇠도 아니다. 하지만 10년의 경력 동안 한 회사에 머무르면서 (아무리 고객사 접선을 통한 여러 회사들에 대한 간접경험이 있다고 해도) 주변에 너무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환경 등 익숙한, 기대할 수 있는 혹은 예상할 수 있는 업무환경에 놓인지가 꽤 되다보니 새로운 사람과 환경 등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데 이 필요를 가장 잘 풀어줄 수 있는 것이 MBA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재 고객사 프레젠테이션이나 대외 컨퍼런스, 웨비나 등에서 발표를 하는 역할로 말을 많이 하는 롤이지만, 뜬구름 잡거나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말 많은 블라블라 비지니스를 극도로 싫어한다 (나는 내향성 성격 성향의 소유자. 이런 블라블라 비지니스는 보통 팀 회의나 내부 협업 과정에서 많이 일어난다). 그런데 가만히 세상을 보니, 하는 것은 적고 말만 줄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이상하게 좋고, 그런 사람들이 실제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니 가치관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은 전혀 아니고,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다라는 마음으로 MBA를 통해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블라블라 비지니스에 대한 나의 항마력을 증진시키고 나도 어느 정도는 너무 겸손하지 않게 나의 아아디어나 성과를 무미건조하지 않게 풀어낼 수 있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좋은 연습의 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이상하게 의욕에 불타올라 MBA 지원을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는 이리저리 정보를 찾아봤고, MBA 유경험자인 친한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대략 와꾸를 잡았다.
풀타임 vs. 파트타임?
1. 내가 담당하는 IT산업군은 휙휙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퇴사하고 풀타임 MBA를 하면 현업에서 빠르게 동떨어지게 될 것
2. 독일 MBA를 할거면, 해외에서 독일 취업을 목표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달리 멀쩡히 잘 하고 있는 직장생활을 때리치고 굳이 풀타임을 할 이유가 나에게는 전혀 없는 것
3. 일 때려치고 풀타임 MBA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월급 포기 못하는 것
어느 학교?
1. 한국에서 SKY 바로 밑에 있는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학벌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대학도 1.5군을 나왔고, 직장도 산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회사지만 1군 글로벌 대기업은 아니기 때문에 왠지 인생에서 1티어의 어딘가에 받아들여지거나 소속되는 그 경이로운(?)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MBA만은 독일 최고의 학교에 합격해보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랭킹 1위의 비즈니스 스쿨은 만하임에 있는 만하임 비즈니스 스쿨이다.
2. 요즘 MBA를 찾아보면 MBA in Digital Transformation 등 특화프로그램이 많다. 학사를 1전공 2전공 모두 문과대에서 취득했고, 현재 업무도 애널리스트이기 때문에 특별히 파이낸스나 기술 등 나에게 굳이 관련이 없는 분야로 특화가 있는 학교보다는 일반적인 매니지먼트 스킬, 리더십 개발에 중점을 두는 프로그램이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하임이 이에 해당.
대략 위와 같은 생각의 길을 지나 1지망으로 만하임 비즈니스 스쿨에 지원하기로 했고, 1지망에서 고배를 마실 경우 추후 프랑크푸르트 쪽으로 이직을 생각하며 프랑크푸르트 괴테 비즈니스 스쿨의 MBA in Digital Transformation을 플랜B로 계획해두었다.
1지망 지원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말 맨땅에 헤딩하듯, 그 친한 언니와 에세이 봐준 친구 두 명의 도움을 제외하고는 오롯이 나 혼자 모든 것을 직장생활 병행하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CV: 내 경력 요약하고 정리하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내가 당연하게 하던 일들을 성과 중심으로 간추리고 특별하게 보이도록 양념을 치되 간결한 CV형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이었다.
Personal Statement: why MBA, why Mannheim, why Part-Time? 나의 이야기를 이 삼박자에 맞게 스토리라인을 꾸리고 버무려내는 것 역시 변비환자 똥 싸는 것처럼 괴로운 창작의 과정이었다. 분명 누구나 MBA에 지원하는 이유는 거기에서 거기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더 돋보이게 할 것이냐, 그 와중에 왜 하필 나를 뽑아야하냐?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내향성인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Self Introduction: 10장짜리 자기소개 PPT 파일을 만들거나, 5분 이내의 비디오 파일을 만들거나, 혼합 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길래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같이 유튜브나 틱톡 등 크리에이션이 도처에 깔려있는 이 시기에, 왠지 10장짜리 PPT만 띡 던지면 너무 구시대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물론 나는 구시대적인 인간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적극성을 어필하기 위해 PPT 파일로 만든 자기소개 발표를 녹화해서 보내는 것으로 타협했다. 오그라드는 내용이 좀 군데군데 있었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블라블라 비지니스에 대한 항마력을 키우기 위한 연습 제1단계 아니겠는가?
추천서: 내 직속 상사인 파트장(VP)에게 부탁했다. 다행히 빠릿빠릿하신 분이어서 제때 잘 써주셨고, 본인의 객관적인 평가 후 나에게 리뷰를 부탁하셔서 어느 정도 타협된 내용으로 제출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입학지원서의 모든 항목을 빼곡이 기재하는 것이 힘들었고 (내가 나의 지나온 날들에 대해 너무 기억을 안 하면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서류 준비하는 것들도 번거로웠다.
어쨌든, 지나온 일정들을 정리해보자면
9월: MBA에 지원해야지 하고 결심
10월: IELTS 공부
11월: IELTS 시험 (아카데믹 오버롤 7.0)
12월: 어드미션 매니저에 CV체크 (지원자격 리뷰) 요청
1월 초: 어드미션 매니저와 1:1 라이브 컨설테이션
1월 말: 1차 인터뷰 (프로그램 교수님 1명, 어드미션 매니저 1명)
2월 초: 전화상으로 합격 통보, 2차 그룹 인터뷰는 진행할 것이나 이미 합격한 것이니 다른 지원자들을 구경하러 오는 느낌으로 참가하라는 안내
2월 중순: 2022년 입학 오퍼 (컨트랙트) 받음, 싸인해서 돌려 보냄
이렇게 나는 장장 6개월간의 여정 끝에 만하임 비즈니스 스쿨의 파트타임 MBA에 합격하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CV, Personal Statement, 인터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래 스크린샷은 실제 내가 받은 합격통보 및 오퍼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