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은 총 6개의 소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5번째 소곡은 두 개의 미뉴에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1미뉴에트는 장조이며, 화성과 구조의 정석을 따르면서도 현학스러움보다는 세련함이 느껴지는 바흐의 성정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은 제1미뉴에트가 제2미뉴에트로 전환되는 순간부터이다.
제1미뉴에트와 대조적으로 제2미뉴에트는 단조이며 차분한 빠르기이다. A - A - B - C - B - C라는 단순한 구조가 상승과 하강의 모티프로 얽혀 있다. 각각의 상승과 하강은 한두 마디를 넘지 않지만, 장화음과 단화음의 틈 사이를 우아하게 활공하는 이들 음은 형용하기 힘든 서정성을 자아낸다. 하강하는 순연한 음들의 실이, 애틋한 부드러움으로 나를 존재의 깊은 물음으로 이끄는 것을 느낀다. 그로부터 스며드는 불안과 애수가, 상행하는 다섯 개의 음들로 일소되는 것을 느낀다. 자아와 세계를 가르는 그 모든 괴로움과 무심함이 해일처럼 몰려들어 나를 집어삼키려는 순간, 그것이 파도의 거품이 되어 주위가 고요해지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나는 이 미뉴에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려는 것인지 구원을 안기려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지고, 혼란은 이내 새로운 인식으로 거듭난다. 제2미뉴에트는 단조이지만 그것은 비발디의 질풍노도를 달리는 단조도, 베토벤의 고뇌하는 단조도, 모차르트의 탄식하는 단조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상승과 하강, 질문과 구원, 희망과 절망, 빛과 어둠, 환희와 비통, 의미와 공허, 삶과 죽음 — 그 모든 이분법의 경계에 걸친 존재들을 위한 송가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경계에 걸친 장소와 때에 우리의 존재 또한 경계에 걸치곤 한다. 오늘과 내일에 걸친 새벽, 침대에 누워 텅빈 천장과 세계의 유사성을 가늠해 보는 사람. 시끌벅적한 술집을 잠시 나와 골목에 서서 자신의 입김을 응시하는 사람. 부모의 임종을 기다리며 병실의 시곗바늘 소리를 가만히 듣는 사람. 두 육중한 2차원의 면들 사이에 어린 1차원의 경계는 너무나 희미하고 연약해 그 경계에 걸친 모든 존재를 나는 어쩔 수 없이 연민하고 동정한다. 빨랫줄에 걸친 채 힘없이 바람에 펄럭이는 옷가지들을 보듯이. 그런데 나 또한 그런 옷가지 중 하나이기에 바람에 펄럭이고, 햇빛을 맞고, 비에 젖는데. 그렇기에 더욱더 열심히 위로를 건네고, 위로를 필요로 하면서,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순환논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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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미뉴에트는 제1미뉴에트의 마지막 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 시작되며, 그 끝은 곧바로 제1미뉴에트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제2미뉴에트는 두 개의 제1미뉴에트 사이에 걸친, 모음곡 안의 소곡 안의 소곡인 것이다. 그 2분 남짓한 작은 틈새에서 초연하게 상승하고 하강하는 음들을 들으며, 나는 이 순간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