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탐색을, 나는 연기를
그가 나를 본다면,
나는 그 시선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그건 쉽지 않았다.
매번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느껴지는 기묘한 기운.
처음엔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 걸까.
가끔은 그것조차 헷갈린다.
오늘도 그 카페에 앉았다.
창가 쪽, 볕이 적당히 들어오는 자리.
나는 노트북을 켜놓고, 이메일을 쓰기도 하며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그중에는, 그도 있었다.
그는 늘 그랬다.
커피잔을 들고, 주변을 살피는 습관.
그 시선이 나를 스쳤다.
나는 그걸 못 본 척했지만, 이미 익숙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안다.
“일에 몰두한 여자”,
“도도한 여자”,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여자.”
그 말들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다만 그건,
그들이 나를 본 방식일 뿐이다.
심리학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불편한 대상을 만났을 때
‘해석’을 통해 불안을 완화한다고.
그것을 투사라고 했다.
그가 나를 야금야금 스캔하려 할 때,
실은 그는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나를 흘깃거릴 때,
나 또한 그의 머릿속을 해부해 본다.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판단이 끝나면 내게 말을 걸어올까.”
그런 식으로 속으로 중얼거린다.
웃기다.
나를 탐색하는 그의 진지한 얼굴이,
마치 거울 속의 나 같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동시에 나 자신도 바라본다.
물론 나도 그에게 완전히 무심하지 않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의 시선이 나를 스칠 때,
나도 모르게 모든 동작이 멈춰진다.
그건, 호감이라는 감정의 잔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무심한 태도 속에 숨어 있는 불안을 본다.
예전에 상처받은 사람만이 가지는
‘먼저 다가가지 않기’의 태도.
그건 어쩌면, 나도 같은 부류일지 모른다.
오늘의 일기 끝.
오늘의 진단: 타인의 시선 내면화, 경미한 회피 성향.
오늘의 처방: 지켜보기는 하되, 내색하지 않기.
그리고 내일은 —
그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내 커피의 온도를 느껴보기.
무심한 듯, 익숙하게.
다음 글 〈오늘도 나는 그들을 바라봤다〉
#평가병일기 #내면실험실 #여성심리 #하이브리드픽션 #심리에세이 #감정실험 #평가불안 #투사 #자기 대상화 #관찰일기 #감정관찰 #심리기록 #브런치글 #내면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