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1만 256명이다. 문제는 피해자 인정을 받아도 피해자들은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피해자로 인정을 받아도 지원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피해자 신청을 아직 하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훨씬 많은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 요건 등 많은 점에서 피해자를 구제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더구나 피해자로 인정을 받아도 피해보증금 회수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피해구제 대책이 보증금 회수가 아닌 대출에 의존하는 것이라서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빚을 내서 해결하라"라는 식이다. 대출 방식의 지원 대책은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에 허덕이게 하는 조삼모사식 방안일 뿐이다.
정부가 마련한 피해구제 방안이 실제로는 대부분 피해자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탁상공론에 가까운 대책들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의 무능한 대책으로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 소극적인 정부 대책으로 피해의 구제는 더뎌지고, 고통은 오로지 피해자들의 몫이 돼버렸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불완전한 제도를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올봄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 지원을 위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자, 법 제정에 반대하던 정부·여당도 뒤늦게 입법 논의에 참여했다. 그 결과 2023년 5월 25일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급하게 통과된 법이라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도 피해 현황이 어떤지 파악하지 못했고,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당시 여러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비극이 발생하는 상황이라서 정부안 발표 29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반대로 깡통전세 피해자들은 특별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요구한 선(先)구제 방안인 '임차보증금반환 채권 매입' 방안도 제외되었다.
지난 6개월간 시행된 '전세사기 특별법'의 실효성은 상당히 낮았다.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피해자 중 정부의 지원을 받는 비율은 17.5%였다. 또한 지난 6개월간 LH의 피해주택 매입 실적도 0건이었다. 이렇듯 '전세사기 특별법'은 반쪽짜리 특별법, 생색내기 특별법 그 이상이 아니었다.
사각지대도 많고 부실하게 제정된 법이라, 정부와 여야 모두 '전세사기 특별법'이 부실하게 입법되었다고 인정하고, 법 시행 후 6개월 후에 보완 입법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보완 입법을 위해서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실태조사 등 현황을 파악해서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 당사자들이 피해자 인정 신청 시 낸 서류만으로 피해조사를 대체하면 된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실태조사를 외면했다. 모든 피해자가 피해 신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미 피해 신청한 사람들의 데이터만으로 갈음한다는 것은 생색만 내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 전세사기 피해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외면하는 것이지 피해자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전세사기 특별법'의 부실‧미흡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선(先)구제 후(後)회수'인데 정부와 여당은 관련 법률개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6일 열렸던 법안검토보고서 논의 당시 국토부와 법무부 및 기재부 등 정부 당국은 야당과 피해자, 시민사회가 제안한 '선구제 후회수' 등의 보안 입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왜 임차인이 모두 감당하냐"며 법 개정을 외면하는 정부‧여당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이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던 12월 21일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단체는 대안없이 야당의 법률개정안을 반대만 하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규탄하고, 정부와 국회가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과 지원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아시아의 왕이 될 자만 풀 수 있다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사람은 알렉산더였다. 그는 복잡한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결국 알렉산더는 아시아를 정복한 왕이 된다.
전세사기 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매듭이 복잡하여 순서대로 풀어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식의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단순한 해결책이 가장 좋은 해법이기 때문이다. 전세사기라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임차보증금 부실채권 매입을 통한 피해자 구제라는 알렉산더식의 해법을 동원해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신속하게 시행하여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보증금 전액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더 많은 금액을 회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바로 핵심이다. 이에 허종식 및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법률개정안에 '임차보증금반환 채권 매입' 관련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임차보증금반환 채권 매입을 반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 다른 사례들과의 형평성, 공적재원 소요 등을 고려할 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점 ▲ 임차인의 구제를 위해서는 채권을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여야 하는데 그 손해가 공공에 귀속되고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는 점 ▲ 보증금반환채권의 적정 매입가를 정밀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점 등의 반대 이유를 들고 있다.
법무부도 ▲ 국민이 부담하는 예산으로 국가가 사기 피해 금액을 보상해 준 전례가 없고 ▲ 사인 간의 거래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하여 보상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 보이스피싱 등 다른 사기 피해자 또는 다른 범죄피해자와의 형평성에 반하고 ▲ 향후 고의로 채무불이행을 일으키는 등 도덕적 해이로 인한 악용 사례 발생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법률개정안에 반대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선순위 부실채권 할인 매입 방식은 정부의 재정이 추가로 들어가는 방안이 아니다. 금융기관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전문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의 고유계정 사업으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더구나 부실채권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이후 피해주택 경매로 회수할 수 있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금융기관 선순위 부실채권을 할인 매입한 후 일정 기간 경매권 실행을 유예하면 두 가지 효과를 더불어 얻을 수 있다. 우선 피해임차인에게 피해주택에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하여 주거 안정을 거둘 수 있다. 둘, 피해주택을 경매하는 과정에서 채권 매입 가격 수준만 배당받으면 임차인에게 돌려줄 피해보증금을 증액시킬 수 있다.
전세제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깡통전세, 역전세로 인한 전세사기는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전세를 포함한 주택임대차시장의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서 정보비대칭성, 불합리한 채권 우선순위, 공인중개사가 등 관련 전문가의 책임과 윤리 문제 등에 대한 해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전세보증금 보증 비율 상한, 전세대출 축소(임차인 및 임대인 DSR 규제), 전세권 설정 의무화 등을 통한 전세보증금 보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세시장 규모를 줄이면서 월세가 전세보다 주거비 부담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조세, 금융 등의 제도 정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12월 27일 '선구제 후구상' 전세사기특별법이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상임위 전체회의에 불참했다. 여당과 정부가 반대하는 이 법률개정안이 시행되려면 향후 법사위와 본회의 그리고 대통령 거부권 등의 장애물이 남아있다.
이 글은 12월 26일 오마이뉴스에 전문이 기고되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988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