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라는 말은 최근에는 '소신'이라는 말로 주로 쓰인다. 이 단어는 '개성'과는 조금 다른 말이다. 개성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신념, 소신은 굳게 믿는 '마음'을 의미한다. 신념이나 소신 대신 '지조'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신념은 개인의 삶의 목표와 방향을 결정한다. 신념이 없는 삶은 매우 우유부하고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신념은 인간이 무언가를 결정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신념이 없는 인간은 그날그날 되는대로 육구에 따라 살 뿐이며,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순간이 오면 결정을 판단할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려워서 그냥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다만 개인의 신념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게 되거나 반사회적일 경우에는 신념이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신념이나 소신이라는 특히 젊은 시기에 강조되는 말이다. 청소년이나 사회초년기에 많은 사람들은 신념이나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삶의 목적성, 가치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경험을 충분히 한 나이에도 충분히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신념있게, 또는 소신있게 살아가고자 마음을 먹는다 해도 주어진 시간을 과연 소신있게 보내고 있는지, 나름대로 잘 보내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소신있게 한 행동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오로지 자기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잘 소비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나의 계획대로, 또는 내 소신대로 시간을 보낸다 해도 나중에 가면 후회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게 시간이라는 개념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사람은 짧게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길게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몸이 건강하든, 정신이 건강하든, 건강한 삶을 위해 건강하고 올바른 도전을 하려고 해도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날이 오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신은 가끔 삶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스트레스에 대한 변수들을 맞닥뜨린다. 그 변수는 사물이 될 수 있고 환경이 될 수 있고, 사람이 될 수 있고, 사회현상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 변수들은 삶에 골고루 스트레스를 제공한다. 그 변수들을 통제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망가지거나 삶을 후회하는 길로 들어서기 마련인데, 소신은 그 변수들을 통제하거나 제어하기 위한 힘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소신을 회피에 대한 당위성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합리화'도 이에 해당한다. 우리는 다루기 어려운 변수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변수와 정면으로 부딪쳐 보기도 하고 거리를 두기도 한다. 변수가 사물이면 그 사물을 버리거나 없앨 수 있지만 환경이거나 사람일 경우 그들은 쉽게 떨어뜨리거나 바꿀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면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그것들을 변화시키는 게 용이할지 내가 멀어지거나 바뀌는 게 더 용이할지. 여기서 우리는 '소신'이 필요하다. 100% 만족할만한 선택은 매우 어렵지만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만이 안다.
소신있게 행동하거나 소신있는 삶을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먼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모자란 것은 불행일 수 있지만 과한 것이야 말로 더 큰 불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상관없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 능력 이상의 것을 탐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키워가면 가진 것을 펼치지 못하거나 가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불행을 불러올 뿐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객관화가 필요하며 자신의 경제적 기반, 능력, 사회 환경 등을 알아야 하고 그 후에는 소신있게 행동하기 위해 어떤 능력이나 실력을 키워야 할지,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할 지 알 수 있다. 그 능력이나 실력이 육체적 능력일 수도 있고 지적인 능력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말을 잘 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타인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말들은 타인의 소신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다. 자신의 소신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소신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굳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는다. 적절할 때 침묵할 줄 알면 말하고 듣는 리듬을 조절할 수 있고 흐트러진 대화의 흐름을 바꿔주며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한다. 세 번째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인생은 승리와 패배로 결정되거나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이긴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이긴 게 아닌 경우가 있고 반대로 그때는 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는 일도 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못해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를 섣불리 판단하거나 결정하기도 하고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잠시 멈추거나 휴식을 취하면 뒤쳐지는 것같이 느껴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생은 메달이 결정되는 레이스가 아니다. 본인에게 성장할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는,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한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틈이 보여 나에게 어떠한 간섭이나 공격이 들어와도 꿋꿋히 버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러한 힘은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걸러 들을 수 있게 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말을 한다는 법은 없다.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유독 우리나라는 소신있게 살기 힘든 환경이다. 개인의 성공이나 발전의 수단으로 '공부' 이외의 방법을 잘 고려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공부를 강요한 덕(?)이기도 하고, 학교나 학원의 주입식 교육, 치열한 입시 경쟁이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공부만이 답이라는 인식을 심게 한다. 하지만 공부는 성공을 위한 효율성이 높은 작업이지 효과성이 보장된 작업은 아니다. 즉, 공부는 성공의 수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이지 무조건적인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는 '집중력', '계획성', '지능', '적은 기복', '심리적 안정감', '시간 관리' 등 갖춰야 할 요소들이 생각보다 많다. 단순히 높은 지능만으로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공부가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에게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면 열등감과 패배의식으로 가득해져 삶이 피폐하다고 느끼게 되고 행복지수는 극도로 낮아진다. 사람은 머리가 똑똑한 것 외에도 많은 능력을 지닐 수 있다. 운동을 잘할 수도 있고, 외모가 출중할 수도 있고, 타자를 빠르게 칠 수도 있고, 많은 아이디어로 창작을 해낼 수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소신있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관심있는지 알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나 자신을 '나답게' 발전시킬 수 있다. 젊음만이 추구할 수 있는 경험이라던지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젊은 시기에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