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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Jul 06. 2022

볼리비아 소금호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마음에 남은 - 장소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이 소설을 세 번쯤 읽었다. 두 번 읽은 것은 확실하고 세 번째 혹은 네 번째로 책을 펼쳤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제목을 두 번쯤 속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구나. 내용은 남지 않았다. 두 번 읽었을 때에도 역시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그 다음의 존재마저 확신할 수 없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완벽하게 사라지는 책도 드물 것이다. 집중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아무 감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장을 덮는 순간 제목 외에는 번번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어쩌면 표지밖에 없는 책, 제목밖에 없는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소설.     


   어쩌면 제목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페루가 아닌 볼리비아 소금호수에서 이 제목은 그 내용을 보여주었다. 소금호수 주변을 걷는 동안 바람이 귓가를 위잉 울렸고, 왠지 뺨이 얼얼했으며 눈앞에는 온통 하얗고 흐린 풍경, 꿈만 같았다. 여기가 천국인가,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인가. 호수에는 살아있는 홍학들, 호숫가에는 말라붙은 홍학의 사체들, 화석처럼 보이는 깃털과 깃가지. 죽으면 이런 곳으로 오는 건가. 발밑의 깃털들을 보면서 새들은 죽을 때가 되면 긴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애써 이곳까지 와서 말라붙은 깃털이 되는 걸까, 생각했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나쁘지 않겠구나. 이런저런 죽음의 관념들을 털어내고 그저 이런 곳, 이렇게 바싹 말라서 날아가는 죽음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축하고 썩어가고 벌레가 꾀는 죽음이 아닌 건조하고 말라붙고 바람에 흩날리는 죽음. 죽을 때 이곳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을 때면 이곳으로 와야겠다고, 이곳이면 다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부터 그곳은 내 마음의 종착지가 되었다. 내게는 그곳이. 모든 새들은 그곳에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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