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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Jul 12. 2022

맺지 못한 인연: 서화 할머니

마음에 남은 - 사람들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광판에 내 번호가 뜨면 가서 약을 찾아오는 방식이었다. 환자가 워낙 많다보니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경우가 흔했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전광판에 번호가 뜨고 또 사라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약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오늘따라 더 늦어지는 것 같다’로 시작해, ‘여기 학교 다니냐’, ‘전공은 뭐냐’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윤동주 얘기가 나왔다. 북간도 같은 마을에서 살았고 친척이라고 하셨다. 와, 정말요? 신기하네요. 직접 본 적도 있으세요? 그랬다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할머니는 허리를 편 채 꼿꼿이 앉아 계셨고 기품이랄까, 위엄이 있는 모습이었다. 어린 학생인 내게 계속 존댓말을 쓰셨다. 서예를 하신다고, 시간이 되면 와서 배우고 구경도 하라고 하셨다. 아, 예.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그리고 잊었다.


  한 달 정도 지나 학교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 봉투에 붓글씨로 학과와 학년,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역시 붓글씨로 쓴 편지와 난초 그림. 한문이 섞여 있어 아, 이건 무슨 글자더라, 고민하며 읽었다. ‘초면에 신세를 너무 졌다’고 하셨지만, 한참 이야기를 나눈 것 외에 내가 한 건 딱히 없었다. ‘방학하거든 놀러 오너라. 공부 열심히 하고 책 많이 보는 것도 공부다.’ 한 글자 한 글자의 정성과 단정한 난초 그림이 황송해서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하나 한참 생각해야 했다. 정말 뵈러 가야 하나, 진짜 가도 되나, 가면 언제 가나, 어떻게 무얼 들고 가나, 가서는 뭐라고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부담스러웠고 몸둘 바를 모르겠어서 답장도 쉽지 않았다. 겨우 겨우 ‘방학하면 갈게요, 감사합니다’, 그런 답을 보냈던 것 같다. 



  새해에 다시 편지를 받았다. 근하신년, 그리고 역시 단정하고 품위 있는 난초. 그리고 이제 막 문을 연 서화연구실 초대장도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둘러 거절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즈음 집에 일이 생겼고, 이제 어떡해야 하나 근심만 가득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 여유는 없다고 생각했고 알바를 해야 하나, 우리집은 어떻게 되는 건가, 내가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었지만 내가 무엇이든, 마음으로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학교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모두 여유가 있을 때에나 하는 거지, 이제 내게 그런 시간은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할머니를 만나고 서화연구실에 놀러가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치, 여유, 회피, 빈둥거리기 그런 것. 제가 사정이 안 되어서 가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답장이었던가. 그리고 당연히 다시는 뵙지 못했다. 


  지금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망설임 없이 설레며 찾아뵈었을 것이다. 서화연구실에 꽃을 들고 찾아가, 어색하고 쑥스러워도 주위를 둘러보고 또 내심 좋아하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붓이라도 쥐어보게 된다면 와 내가 이런 것도 해보게 되다니 정말 운이 좋구나 감탄했을 것이다. 이런 분을 내가 알게 되다니, 자랑스러워하며, 병원 의자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모든 관계가 버거웠고, 어떻게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어떻게 인연을 이어가야 하는지 몰랐다. 인연의 소중함도, 우연의 기쁨도 몰랐다. 수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관계는 무한정 넓어지고 무거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와의 만남은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 내 생활과는 동떨어진 낯선 스침이라고 여겼다. 그런 스침은 앞으로 수십 번, 수백 번 경험하게 될 거야. 


  어린 생각이었다. 어리석은 생각이기도 했다. 그런 스침은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 내 생활과 동떨어진 낯선 스침이라면 더욱 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그저 모든 일에서 도망치고만 싶어했다. 앞으로도 기회는 많을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고, 또 후회한다. 소중한 인연을 나는 그냥 지나 보냈다.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나 맺지 못했다. 가끔 할머니를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어렸으니 그냥 할머니라 부를 수 있었으나 이제 생각해보면 그렇게 쉽게 칭할 수도 없는 관계였다.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야 했을까. 문득문득 그 할머니를 생각하고, 내가 그 할머니의 나이가 되면, 그래서 어린 학생을 만나면 역시 순수한 마음으로 친근해하고 기꺼이 초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고, 할머니의 마음 넓이와 깊이를 가늠해보고, 새삼 감사하고 아쉬워한다. 맺지 못한 인연, 그러나 소중한 스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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