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은 - 장소들
남미 여행의 무엇이 그토록 특별했었던가 생각해본다. 왜 나는 자주 그곳을 되새기고, 문득 그리워하고, 언젠가 다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가. 마치 그곳이 나의 고향인 것처럼, 마음을 그곳에 두고 온 것처럼, 훗날 모든 게 싫어지고 나에게 남은 인연이랄 게 하나도 없게 되면 그곳에 가리라, 한인 민박을 하며 멀리서 찾아왔다 훌쩍 떠나는 사람들만 스쳐보내리라 결심하는가.
모든 것이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비슷한 구석을 찾아내는 게 억지스러울 만큼 다른 점이 많으므로, 계절과 기후도, 풍습도, 먹는 것과 입는 것도,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다루고 있는 소재와 방식, 색채와 형태까지 낯설고 그 이름들, 수많은 신들의 관계와 형상과 온갖 문화의 혼종과 충돌,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세계관과 격동의 역사, 모든 곳, 모든 것이 두려울 만큼 낯설기 때문이라고.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되는 데에만 수십 년이 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뭔지 전체적인 얼개에서 대충이라도 이해하게 되는 데에만 백 년이 걸릴 것 같다. 영원히 낯선 도시, 영원히 여행자로, 이방인으로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는 도시. 그래서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장소에서 온 사람들, 내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들을 믿는 사람들,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먹고, 내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을 하고, 나는 영문도 모를 풍습을 따르는 사람들. 허깨비처럼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 섞여 이미 사라졌고, 사라져가고, 사라져갈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사라져버린 도시가 텅 빈 채로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곳. 신들도 떠나 바람 소리만 들리는 신전에는 해독할 수 없는 상징들만 남아 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모든 것이 모호하고 복잡하게 엉켜 있는 곳. 띠와나꾸 유적을 걸으며, 떼오띠우아칸 달의 피라미드 위에 앉아 태양의 신전과 죽은 자들의 길을 바라보며, 코바 피라미드에 올라 아득한 밀림과 그 아래 세노테를 상상하며, 내가 살아 있는 것인지, 허깨비로 여기를 떠도는 것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아득해졌다. 템플로 마요르에 가면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가 층층히 쌓여 발밑에 놓여 있는 걸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걸 믿는 게 더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성당 아래에, 대통령궁 아래에, 집과 슈퍼와 카페와 레스토랑 아래에 피라미드가 있고 신의 머리가 있고, 해골탑과 봉헌물들과 제단이 있다니. 수십 년 동안 고고학자들이 면봉과 붓으로 유물들의 먼지를 털고 윤곽을 맞추고 전체를 그려내고 모아내고 있단다. 이곳 고고학자들은 평생 일거리가 있겠어, 농담처럼 생각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지하에 들어가 언제 적 것인지도 모를 유물들을 찾고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맞춰내는 일을 하며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그들. 나도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초월하여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을 만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