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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Aug 11. 2022

남미: 무엇이 그토록 특별했던가

마음에 남은 - 장소들

  남미 여행의 무엇이 그토록 특별했었던가 생각해본다. 왜 나는 자주 그곳을 되새기고, 문득 그리워하고, 언젠가 다시 ‘돌아’가리라 생각하는가. 마치 그곳이 나의 고향인 것처럼, 마음을 그곳에 두고 온 것처럼, 훗날 모든 게 싫어지고 나에게 남은 인연이랄 게 하나도 없게 되면 그곳에 가리라, 한인 민박을 하며 멀리서 찾아왔다 훌쩍 떠나는 사람들만 스쳐보내리라 결심하는가. 


  모든 것이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비슷한 구석을 찾아내는 게 억지스러울 만큼 다른 점이 많으므로, 계절과 기후도, 풍습도, 먹는 것과 입는 것도,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다루고 있는 소재와 방식, 색채와 형태까지 낯설고 그 이름들, 수많은 신들의 관계와 형상과 온갖 문화의 혼종과 충돌,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세계관과 격동의 역사, 모든 곳, 모든 것이 두려울 만큼 낯설기 때문이라고.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되는 데에만 수십 년이 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뭔지 전체적인 얼개에서 대충이라도 이해하게 되는 데에만 백 년이 걸릴 것 같다. 영원히 낯선 도시, 영원히 여행자로, 이방인으로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는 도시. 그래서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장소에서 온 사람들, 내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들을 믿는 사람들,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먹고, 내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말을 하고, 나는 영문도 모를 풍습을 따르는 사람들. 허깨비처럼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 섞여 이미 사라졌고, 사라져가고, 사라져갈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 


  사라져버린 도시가 텅 빈 채로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곳. 신들도 떠나 바람 소리만 들리는 신전에는 해독할 수 없는 상징들만 남아 있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모든 것이 모호하고 복잡하게 엉켜 있는 곳. 띠와나꾸 유적을 걸으며, 떼오띠우아칸 달의 피라미드 위에 앉아 태양의 신전과 죽은 자들의 길을 바라보며, 코바 피라미드에 올라 아득한 밀림과 그 아래 세노테를 상상하며, 내가 살아 있는 것인지, 허깨비로 여기를 떠도는 것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아득해졌다. 템플로 마요르에 가면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가 층층히 쌓여 발밑에 놓여 있는 걸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걸 믿는 게 더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성당 아래에, 대통령궁 아래에, 집과 슈퍼와 카페와 레스토랑 아래에 피라미드가 있고 신의 머리가 있고, 해골탑과 봉헌물들과 제단이 있다니. 수십 년 동안 고고학자들이 면봉과 붓으로 유물들의 먼지를 털고 윤곽을 맞추고 전체를 그려내고 모아내고 있단다. 이곳 고고학자들은 평생 일거리가 있겠어, 농담처럼 생각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지하에 들어가 언제 적 것인지도 모를 유물들을 찾고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맞춰내는 일을 하며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그들. 나도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초월하여 어디인지 모를 곳에서,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을 만지며.


볼리비아, 띠와나꾸 유적
볼리비아, 띠와나꾸 유적
볼리비아, 띠와나꾸 유적
멕시코, 코바의 피라미드 위에서
멕시코, 떼오띠우아칸
멕시코, 떼오띠우아칸


멕시코, 템플로 마요르
멕시코, 템플로 마요르
멕시코, 템플로 마요르
멕시코, 템플로 마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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