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가 살아가는 이상한 세계
얼마 전 장애판정을 받은 내담자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적극 권했다. 그는 우영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장연 시위에는 반대하는 모순을 보인다며 분노하기도 했다. 나는 남들이 많이 보는 건 잘 보지 않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우영우 열풍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내담자의 강력 추천에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나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웠다. 첫 번째로 현실 속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꽤나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고, 두 번째로 자폐인을 마주하는 주변인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드라마 속 자폐는 현실적이 이었고, 자폐인 우영우가 살아가는 드라마 속 세계는 비현실적이었다.
자폐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제한되거나 흥미, 상동적 행동이 동반될 때 진단된다. 첫 화에서 우영우가 출근하기 전 아버지 우광호는 '반향어 자제, 엉뚱한 소리 및 솔직함 금지, 직장에서 고래 이야기 금지'라고 주의를 준다. 이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자폐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자폐인은 상징적인 언어의 사용이나 타인의 마음, 감정을 파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때문에 비자폐인이 보기에는 자폐인의 말이나 행동이 '엉뚱하고, 지나치게 솔직하다'라고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우영우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시니어 변호사의 말에 '이제라도 아셨으니 됐습니다'라고 답한다. 누구나 그런 말을 하는 통쾌한 상상을 하지만 보통은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같은 의례적인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영우는 문법적으로는 맞지만 사회적 맥락에는 다소 어긋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우리의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타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 기러기 토마토 같은 특이한 문구의 사용은 상동적 행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역시 자폐의 흔한 증상이다. 반향어에는 상대방의 말을 바로 따라 하는 즉각 반향어와 이전에 들었던 말을 되풀이하는 지연 반향어가 있다. 가끔 우영우는 아버지가 주의를 준 '반향어 자제'라는 말을 되뇌는데 사실 이것 자체가 지연 반향어에 해당한다. 자폐인은 극도로 제한되고 고정된 흥미를 가지기도 하며 우영우의 경우 고래가 여기에 해당하는 듯하다. 이처럼 우광호는 우영우의 아버지답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딸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주고 있다.
실제 자폐인들, 혹은 그들의 가족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공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우영우 같은 사람은 많지 않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의 70-80%는 지적장애가 있으며 그중의 절반은 중등도 이상,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그 이하의 지적 능력을 가진다.
내가 봤던 자폐인들은 대부분 3화에 나온 또 다른 자폐인인 김정훈에 가까웠다. 김정훈 같은 자폐아를 가진 어떤 부모님은 다치지 않기 위해 검도 보호구를 구입하기도 했다. 물론 자폐는 이름 그대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영우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영우의 말과 행동 역시 자폐 스펙트럼의 여러 증상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연기는 사실적이다. 때문에 나는 드라마 속 우영우가 절반의 현실과 절반의 판타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본 주변 사람들은 우영우가 현실적인가에 대해 궁금해한다. 하지만 진짜로 비현실적인, 완벽한 판타지는 우영우가 아닌 우영우를 둘러싼 드라마 속 세계이다. 우영우의 돌발행동에도 당황하지 않는 판사, 자폐인에게 기꺼이 사건의 맡기는 의뢰인들, 당연한 듯 자폐를 가진 변호사를 받아들이는 로펌의 동료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범한 우영우가 아닌 평범한 주변 인물들에 주목할 때 드라마는 우리에게 더 중대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왜 그들처럼 자폐인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정신과에서는 범주적 분류와 차원적 분류의 두 가지 관점으로 질병을 바라본다. 범주적 분류란 특정 진단명에 해당하는 증상의 유무에 따라 정상과 질병을 명확히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자폐에 해당하는 고유의 증상 목록이 있고, 여기에 몇 가지 이상 해당하면 자폐로 진단하는 식이다. 차원적 분류는 하나의 연속선 상에서 질환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폐의 증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비자폐인도 가진 어떤 특성이 과다하게 발현된 것으로 개념화된다.
두 가지 관점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진단을 내릴 때는 범주적 분류가 필요하다. 아이가 자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분명히 해야 의학적 개입을 해야 할지, 사회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지 등 앞으로의 대응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단이 아닌 자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원적 분류의 관점이 필요하다. 우영우가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를 반복적으로 되뇌는 상황을 보자. 많은 경우 이 같은 상동적 행동은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에 해당한다. 우영우는 처음 대면하는 상황에서 불안감이 증폭되기 때문에 상동적 행동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는 흔하고 일반적이다.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자기만의 기도문을 읊기도 하며, 괜찮아 할 수 있어라며 혼잣말로 되뇌기도 한다. 차원적 관점에서 우영우의 행동은 누구나 하는 행동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단지 남들보다 크게, 자주 행동하는 것뿐이다.
자폐 진단을 내리고 장애등급을 판정하는 것은 의사와 행정가들로 족하다. 현실에서 우영우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진단이 아닌 이해가 필요하다. 언뜻 이상해 보이는 그들의 행동도 평소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차원적 관점은 이러한 이해를 용이하게 한다.
비자폐인 입장에서 우영우는 이상한 변호사이지만 우영우에게는 이 세계가 이상한 세계이다. 우영우를 비롯한 수많은 자폐인들은 이상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평생의 노력을 기울인다. 자폐는 완치되는 질환이라고 말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치료를 받으며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자폐아들이 어릴 때 받는 행동치료에는 어쩔 수 없이 심리적 어려움이 뒤따른다. 행동치료는 많은 개선과 진보를 이루었으나 여전히 어떤 아이는 치료 과정에서 고함을 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다. 증상이 심한 자폐인은 항정신병약물을 복용하는데 졸음, 입마름 등 다양한 부작용을 겪으며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도 필요하다.
자폐인들은 비자폐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겪거나 약을 먹으며 부작용을 겪을 필요도 없다. 자폐인의 이상해 보이는 말과 행동도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라는 관점의 전환이면 된다. 그들도 우리와 동등하기에 비자폐인이 누리는 모든 것은 자폐인 역시 누리고 싶어 하고 그럴 권리가 있다는 상식적인 생각이면 충분하다. 자폐인이 비자폐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십 분의 일만이라도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우영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