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셋넷 Aug 11. 2022

직장생활이 지옥 같을 때 생각할 것

문제 해결보다 필요한 건 자존감의 회복

내 진료실은 거대한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중심가에 있다. 아침이면 출근하느라 바쁜 직장인들로 거리가 가득 차는데 10시쯤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한 동네가 된다. 점심시간에 사람들은 다시 물밀듯이 거리로 나와 커피 한잔을 마신 후 금세 빌딩 속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직장인들이 나는 모르게 거대한 플래시몹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런 진료실의 위치적 특성 때문인지 자연스레 나에게 오는 사람의 상당수는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진짜 문제를 찾기

보통 직장에서 고난을 겪으면 해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을 거듭한다. 상사와의 갈등이 두려울 수도 있고 과도한 업무량이 문제일 수도 있다. 머리를 싸매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올 때 비로소 진료실을 찾지만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대처 방안에 대해 내가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미 많은 시간을 고민했을 사람에게 내가 마법 같은 해결책을 제시해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만용 일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과 상담을 해보니 회사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솔루션 같은 것은 사실 크게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말 그대로 직장생활이 지옥같이 느껴질 정도라면 직장에서의 어려움은 이미 부수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천천히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의 진짜 문제는 도리어 죄책감과 자존감 저하인 경우가 많다. 



직장이 지옥이 되는 과정 

입사 초기 과중한 업무를 맡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에 적응하기도 전에 새로운 업무가 들어왔고, 선배들은 자기일 하기에 바빠 제대로 모르는 일을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점점 일에 구멍이 나게 되었고 자신이 못한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처리하는 일이 반복되자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한편으로 이 정도 일도 처리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을지, 미안함을 느끼는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기 위해 나에게 찾아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과도하게 미안한 마음, 자신이 초라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죄책감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거나 부탁을 하지 않아 금방 끝날 일이 더 엉망이 되곤 했다. 낮은 자존감은 일을 할 때 과도한 불안감을 초래했고 이는 집중력 저하와 잦은 실수로 이어졌다. 실수가 반복되면 죄책감과 자존감 저하는 더 심해질 것이고 다시 일의 어려움을 초래한다. 강력한 악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마치 눈덩이가 언덕을 굴러가며 점점 커지듯 그 사람의 직장 내 어려움은 거대해져만 갔다. 이제 직장은 지옥이 되었다.



터널시야의 함정 

정신과에서는 터널시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한 문제에 매달리게 되면 거기에 고착되고 점점 주변을 살피지 못하게 되는 인지적 왜곡을 의미한다. 터널 밖에 커다란 세상이 있는데 터널 안에서는 앞의 조그마한 입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유사하다. 많은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터널 시야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직장에서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둘러싼 주변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 



시야를 확장하는 두 가지 방향성

두 가지 방향에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조직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가 필요하다. 내 탓하기 전에 회사 시스템을 살피자. 위에서 예시를 든 신입사원의 상황에서, 신입에게 능력 이상의 업무를 맡기면서 제대로 된 지지체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사실 나의 실패가 아닌 조직의 인사 시스템의 실패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리해가며 일을 완수하는 것은 오히려 회사에 좋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것일 테니까. 내가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부탁하는 상황은 조직 체계를 개선할 문제이지 내가 억지로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직장이 아닌 삶 전체를 조망하며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직장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면 내 삶은 오로지 일로만 채워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살펴보면 일은 내 인생의 일부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내 가족, 친구, 건강, 취미 등등 수많은 요소들이 그보다 더 큰 삶의 부분을 채우고 있다. 일의 실패가 곧 내 인생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업무가 잘 되지 않을수록 퇴근 이후에도, 주말에도 일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렇게 삶 전체를 일로 채우다 보면 일이 곧 인생이며 일에서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기 쉽다. 직장에서 문제가 생길 때는 반대로 일 이외의 것들에 힘써야 한다. 좀 더 가족을 살피고, 친구를 만나고, 틈틈이 취미를 즐기며 나에게는 일 보다 더 큰 삶이 있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내가 많이 고민하는 일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어려움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일이 힘들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일터가 지옥같이 느껴진다면 일단 멈추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계속 불안감이 차오르겠지만, 그럼에도 차분히 삶을 조망하며 시야를 확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직장 내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풀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과 의사가 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