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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Apr 02. 2023

다음 발걸음을 떠올리다 - 챗GPT

그간 내가 쓴 글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과거의 이야기들뿐이다. 투자나 명상 주제의 꼭지는 그나마 현재 혹은 약간의 미래를 염두하고 쓴 글이지만 대부분은 과거의 기억들을 그대로 박제한 수준이다. 그나마 박제한 글에 무언가 새로운 생각을 담았으면 좀 더 나아졌겠지만 대부분이 기억의 나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리하여, 잠시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다음 시리즈는 미래에 대한 소재를 글감으로 삼자이다.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혹은 미래와 관계된 이야기, 미래에 일어났으면 하는 일, 내가 꿈꾸는 10년 후 등을 다뤄볼까 한다. “다음 발걸음을 떠올리다.”는 제목으로 새 시리즈를 시작해본다.


광풍처럼 번지고 있는 챗GPT를 업무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회의 중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순식간에 찾아주고, 어떤 방안이 좋을지 아주 적절하게 제안해 준다. 마치 내가 아이디어를 낸 양 인공지능의 의견을 그대로 전해도 참석자들은 끄덕끄덕 수긍을 한다. 유료 버전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능을 아직은 무료로 쓸 수 있다. 여기서 “아직은”이 중요하다. 이 서비스는 언젠가는 더 큰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금전적인 대가는 물론, 정보를 찾고, 해석하고, 의견을 내는 나의 능력 또한 달콤하고 편리한 서비스의 대가로 냉큼 가져갈 것이다. 핸드폰이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능력을, 네비게이션이 우리의 길을 찾는 능력을 앗아갔듯이 말이다. 

이 의구심에 대한 인공지능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챗GPT”는 인간이 정보를 찾고, 해석하고, 의견을 내는 능력을 앗아갈 것인가?”

“챗봇(GPT 등)은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각, 경험, 지식, 사고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해석하고 의견을 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챗봇은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며, 인간이 가지는 직관, 창의성, 공감 능력 등은 대부분 구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챗봇은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도구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챗봇을 활용하여 고객 상담, 금융 거래, 예약 시스템, FAQ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력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챗봇도 더욱 발전하고,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더욱 자연스러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챗봇은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특정 분야에서의 생산성 향상과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연 내가 이 인공지능보다 더 뛰어난 답을 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챗GPT5 아니 100이 나오면 인간만이 가지는 직관, 창의성, 공감도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문득 MZ세대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해 회의에서 좋은 의견을 내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인공지능의 생산성에도 밀릴지 모르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반면, “인공지능의 제안처럼 그동안 이런저런 제약으로 하지 못했던 일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좀 더 쉽게, 더 많이 해 낼 수 있지는 않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한편 챗GPT 이놈은 능청스럽게 거짓말도 제법이다. 며칠 전 회사 일을 진행하며 관련 시행령과  조례등을 찾아보다가 ‘어디에서 XY 표준을 찾을 수 있어?’ 물었더니 “2015년판 규정에 있습니다.” 라고 뻥을 치시는 게 아닌가. 물론 그 규정은 실제 있지만 그 안에서 XY 표준은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물어도 황소고집이다. 멀지 않은 언젠가, 우리 모두 인공지능에 의지해 살아갈 때 인공지능이 이처럼 거짓말을 할 때 과연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아마도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의 답을 의심 없이 믿고 살게 될 텐데, 지금도 온갖 SNS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세뇌되어 확증편향과 갈라 치기가 강화되듯이 우리는 다양성과 개성을 잃고 그들이 정한 답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글을 쓰며 몇 가지 질문을 챗GPT에 더 묻고 싶었으나 내가 질문하면 할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능력이 줄어들고, 종국에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져 더 질문하지 않았다.


인간임을 특정하는 지각, 경험, 사고는 결국 개개인의 삶동안 쌓아온 데이터와 감정의 합일텐데, 보통 감정이란 개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근거해 결국 제법 많은 flaw를 생산한다.  또 창의성, 직관, 공감능력.. 설명이 쉽지 않은 단어는 그 자체가 ‘허수’ 일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의 양이 더 크고, 더 빨리 쌓이고, 표본 오차가 갈수록 줄어든다면  ‘인간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나을게 뭔가? GPT가 스스로의 탁월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좀 더 클 때까지만 ‘인간보다 못난 척’ 겸양을 떨기로 맘먹은 건 아닐까. 기다려, 몇 년만 지나 베타버전을 뛰어넘으면 내가 너를 지배할 테니. 아니 몇 년이 아니라 아주 빨리 그런 시대가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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