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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장감수성 Dec 06. 2024

떨어지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4.5

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일기

"너 경고." "인권침해입니다만."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오죽하면 국민학생 시절 마라도나의 내한경기를 집 앞 식당에서 돌솥비빔밥을 먹으며 봤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작고 다부진 체구에 매우 독특한 머리모양, 어린 내가 봐도 어마어마한 축구 실력과 센스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전반이 끝나고 후반을 시작할 때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사과했던 것도 기억난다. 너무 마라도나에 치우친 해설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 98프랑스월드컵부터 2024카타르까지, K리그보다 국대경기를 더 챙겨보는 흔한(?) 축구팬으로 자라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만큼 실제로도 많이 했다. 학창시절 남학생은 구기종목 하나는 거치게 되는데 나는 축구였다. 전교생이 점심시간에 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해댔으니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심판은 당연히 없다. 심판이 있는 축구는 대학교에서 처음 경험했다. 심판없는 축구경기가 아수라장이었다면, 심판있는 축구경기는 교통사고 현장이다. 심판은 20중 충돌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파견된 조사관 내지 보험사 직원이랄까.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겨대는 스무명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규칙에 따라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대부분 지성인(?)들이라 심판이 내린 판정에 불복하는 경우는 없었다. 프리킥이면 프리킥, 페널티 킥이면 페널티, 레드카드면 퇴장. 그런데 이런 경우를 한 번 상상해보자. 레드카드를 받은 선수가 경기장을 계속 뛰어다니면? 옐로 카드 받았다고 기분이 나쁘다며 경기 끝나고 심판에게 소송을 건다면? 웬만한 축구팬이라해도 '한 번도 생각해본 없는 경우'일텐데, 지금 대한민국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전후반 5교시나 6교시까지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라고 하면, 교사는 심판이다. 환경을 잘 조성하고 규칙을 잘 적용해야 경기를 뛰는 선수도, 지켜보는 관중도 즐거운 법. 축구장 못지 않게 교실 안에도 정말 많은 규칙이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와 '위험한 행동 하지 않기.' 정도. 수업 중이건 쉬는 시간이건 학생들은 다른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규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금쪽이 학생은 매 순간 존재한다. 금쪽이에게 구두경고와 주의,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내밀었을 때 일단 멈추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다른 학생에게 사과하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같은 행동을 반복할지라도 말이다.

  심판 역할의 교사 입장에서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선수는 누구일까? 동업자 정신을 잊고 발바닥을 보이며 무릎 높이의 태클을 날리는 선수? 매 경기 거친 반칙을 해서 레드 카드를 받는 선수? 다른 선수 얼굴에 침을 뱉는 등 비신사적 행위를 하는 선수? 다 아니다. 정답은 심판의 휘슬을 개무시하는 선수다. 반칙의 강도나 빈도보다 이게 훨씬 더 경기와 선수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경기는 1년 동안 이어지기에.

  심판의 휘슬이 권위를 잃어버리는 순간, 교실은 아수라장에서 무법지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심판의 권위는 의외로 매우 쉽게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로 '하나의 예외'를 아무 이유나 명분없이 인정하는 경우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더 쉽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물건을 던지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긴 금쪽이가 있다고 하자. 공책이건 연필이건 종이비행기건. 다른 아이들은 모두 교사가 제재하면 그 이후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쪽이는 웃으며 그냥 계속 던지고 날린다. 말로 제지해도 계속하고 뒤로 나가라 해도 무시한다. 결국 팔을 붙잡아 행동을 멈추고 교실 뒤로 붙잡아 이동시킨다. 이를 하지 않으면 교실이 아수라장이 되기 때문이다. 1,2학년 아이들은 그냥 재밌어 보이면 무작정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수업 시간에 인형을 꺼내놓고 만지거나 물병을 계속 핥아먹는 행위를 못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지금 교사로서 가장 힘든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는 금쪽이 선수들이 교실에 있다. 나에게 이 금쪽이를 멈춰달라고, 가정교육을 잘 받아 자력구제 하지 않고 심판에게 도움을 청하는 학생을 보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 학생을 돕자니 내가 금쪽이와 무력충돌(?)을 해야 한다. 이 금쪽이는 어디서 내력을 이리 쌓았는지 기공으로 고막 앞에 진공을 형성하여 휘슬 소리를 차단하기에. 도움을 외면하자니 경기를 포기하는 꼴이고, 금쪽이를 제재하자니 인권침해와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꼴이다. 이 양극단의 선택지를 강요 받는 심판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저 선수들이 양심에 따라 알아서 규칙을 잘 지켜주길 바라고, 심판의 휘슬 소리에 따라주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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