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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욱 Nov 19. 2024

라떼 우리 학교는-4

국민학교 다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현직 초등교사가 말하는 학교 이야기

  김훈 작가는 '라면을 끓이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아버지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거듭하는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다.” 여기서 작가의 아버지를 대한민국 교사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독재와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시기, 대한민국 정부는 예산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에 교사들을 갈아 넣었다. 대표로 군시설과 똑같은 학교 시설, 육성회비와 촌지 문제, 그리고 체벌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함께 갈려 나간 건 아마 덤일 게다. 

  육성회비부터 말해보자. 육성회비란 육성회의 운영을 위하여 회원들에게 걷던 돈이다. 육성회 회원은 당연히 학부모 들이다. 학교의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돕기 위하여 수업료와는 별도로 걷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의무교육을 하려면 충분한 예산확보는 기본이자 필수라는 건 지나가던 중2도 알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 정부는 학교장에게 1000원을 주고 빵과 우유를 사서 맛있게 먹으라는 명령을 내린 셈이다. 학교장들부터 똘똘 뭉쳐 단체를 만들고, 교사들과 학부모도 함께 뭉쳐 목소리를 냈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에겐 그럴 수 있다는 의식도 용기도 부족했을 것이다. (참고로 초등학교는 1972년에 농어촌 지역에서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여 1997년부터는 전면 폐지하였다.)

  육성회비를 기억한다면 자연스럽게 촌지로 기억이 이어질 것이다. 육성회비는 20세기에 폐지했지만, 체벌은 21세기에도 10년 이상 교육현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내가 다닌 90년대 학교는 그야말로 치외법권이었다. 아마 교사들에게는 외교관 신분을 부여하고 학교는 조계지로  지정했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수만 가지 이유로 수백 가지 방법을 동원한 폭력을 어떻게 그리 길게 자행할 수 있었을까? 나의 아버지는'황무지에 맨몸을 갈아 넣은 아버지'를 둔 김훈 작가와 비슷한 연배다. 그런 아버지의 출석번호는 72번. (오해하지 마시라. 이청용 선수는 나보다 어리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한 반에 48명이었다. 30년 동안 1/3이 줄었다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밀학급이다. 혈기왕성한 10대 아이들 50~70명을 한 공간에 집어넣고 다툼이나 싸움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은 교사 1명이 맡는다. 이게 가능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했다. 비결은 2가지. 하나는 교사의 직접 통제(매로 때리고 벌주기)고, 다른 하나는 교사의 간접통제(반장이나 선도부)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 있는가? 교육부나 교육청은 어디에 있는가?? 정부로서는 학급당 학생수를 낮추기 위한 예산을 편성하기보다 체벌을 묵인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었을게다. 그리고 실제로 30년 동안 70명에서 50명으로 줄어들지 않았던가? 앞으로 30년이 더 지나 2010년이 되면 30명으로 줄어있을 텐데 뭣하러 열심히 노력하겠는가? (아, 물론 정말 열심히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더랬다. 30년 뒤는 생각도 못하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학교 시설도 짚고 넘어가자. 내가 다닌 90년대 국민학교 시절, 한 반에 48명의 인간 난로가 있음에도 여름은 선풍기 4대로 버텼다. 지금 나에게 이런 교실에서 수업하라고 하면 아마 휴직을 하거나 안되면 퇴직할 것이다. 겨울에는 좀 나았을까? 온도만 놓고 보면 여름보다는 나았다. 교실 한가운데에 등유를 태워 열을 내는 난로가 있고 그 주위로 36.5도로 따뜻한 열을 내는 인간 난로가 48명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초등학교 교실 한가운데에 이런 난로를 들여놓는다고 하면 찬성할 학부모가 있을까? 언제 불이 날지, 언제 화상을 입을지 모르는 그런 환경인데.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난로에 데거나 화상을 입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30년 전 아이들이 지금보다 유난히 얌전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켜서였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얌전하진 않지만 안전수칙은 잘 지켰다. 안 지키면 맞았으니까. 지금 근무하는 학교 대부분은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이 나온다. 80년대 학교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왔으면 방학마다 학교장은 무단 침입자들과 싸우기 위해 용병을 고용하거나 교사들을 동원했을 것이다. 무단 침입자는 문제아로 간주하여 마음껏 패도 된다는 동원령을 내려서.

  21세기가 되고,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도, 정부의 예산절감 전통은 여전하다. 왜냐하면 정치인에게 교육은 무덤과도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학부모들이 분명 존재한다. 게다가 교육정책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매우 어려운 데다가 10년은 지나야 학생과 학부모가 좋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고 대통령은 5년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을 정치에서 독립시킬 수 있을지 많은 교사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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