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현직 초등교사가 말하는 학교 이야기
엄청난 폭우로 서울과 청주를 비롯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프린트하려면 본관으로 가야 하고, 쥐꼬리가 복도를 타고 오르던 그 학교도 자연재해에 큰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여름 방학 중 비가 많이 와서 1층 복도 60cm가량 높이로 물이 들어왔다. 학교가 물에 잠긴 이유는 하루 만에 비가 200mm 이상 내렸고, 학교 자리가 반경 50m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정하 시인이 시를 발표할 줄 알고 미리 학교를 그렇게 지었나 보다. 아니면 학교 주변 건물주들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지도.
화마보다 무서운 게 수마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침수피해는 본관 1층에 그쳤다. 문제는 본관 1층에 교장실과 교무실, 보건실에 행정실과 복사실에 서고까지 있었다는 사실. 컴퓨터가 침수된 건 그나마 괜찮은(?) 일이었다. 행정실 창틀 아래 수납장을 만들고 보관하던 수많은 서류들이 제일 큰 문제였다. 전부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 말렸다. 덕분에 천장 위에 있던 선풍기들이 고생 좀 했다. 서고와 보건실도 난리는 마찬가지. 그래도 결국 햇빛과 시간과 인력과 예산이 돌아가며 일한 덕분에 본관 1층은 점차 본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이번 폭우로 120개가 넘는 유치원과 학교에 침수피해가 생겼다고 한다.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같은 학교에 같은 참사를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국회와 교육부,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예산을 편성하고 지원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그다음 학교에서는 더욱 놀라운 침수피해를 경험했다. 3층 교실 2개와 그 앞 복도와 계단까지 침수된 것이다. 비가 2000mm쯤 온 것일까? 학교를 지하에 지었던 것일까?? 범인은 복도에 있건 급수기였다. 급수기 호스에 문제가 생겨 물이 샜던 것이다. 보통 초등학교는 16:30에 문을 닫고 아침 8시면 문을 연다. 교실과 복도를 발목 복숭아뼈가 잠길 정도로 침수시키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필 물이 새기 시작한 날이 금요일이었고, 그다음 주는 추석이었다. 거의 1주일간 쫄쫄쫄 새던 물은 모이고 쌓여 시냇물이 되고 큰 강물이 되더니 마침내 바다가 되었다. 수업이 없던 모든 교사들은 맨발에 쓰레받기, 양동이를 들고 물을 치웠다. 혹시 집 안이나 교실 바닥이 정말로 완벽하게 편평한지, 아니면 어딘가 기울었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히 불편하지 않고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그냥저냥 지내게 되고. 그날 우리는 교실 바닥 이 편평하지 않다는 사실과 어디가 가장 지대가 낮은 곳인지도 덤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 학교 건물은 대충 짓는다, 정부가 짓는 시청이나 주민센터, 도서관이나 우체국, 교도소 등 모든 건물 중 학교가 단위면적 당 건설비용이 제일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등등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아주 깨끗하고 반들반들한 교실 바닥을 볼 수 있었다.
수마가 할퀴고 간 학교를 떠난 지 1년 조금 지났을까, 나는 지역 뉴스에서 그 학교를 봤다. 학교가 뉴스에 나오는 경우는 보통 3가지다. 하나는 미담, 다음은 자료화면, 마지막은 사건 사고. 당연히 마지막으로 갈수록 비중도 많아진다. 학교가 뉴스에 나온 이유는 학교에 불이 났기 때문이었다. 학교 행사 중 불이 났는데 대처를 잘해서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불이 난 경험은 나에게도 한 번 있다. 내가 정식 발령을 받기 전 기간제 시절, 정부와 지자체가 한창 학교에 에어컨을 보급하던 시기였다. 선풍기를 작동시키는 줄을 아래로 잡아당기면 마치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잡은 느낌이 딱 2초간 들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퇴근할 때 잡아당기지 않았던 그 동아줄이 도화선이 되었나 보다. 아침 8시 30분이 되기도 전에 학교에 화재경보가 울렸다. 누가 아침부터 화재경보기를 키는 장난을 했나, 오늘이 소방훈련하는 날이었나?, 곧 오작동이라 방송이 나오겠지 하던 내 생각은 모두 틀렸다. 곧바로 X학년 X반 교실에 불이 났다는 방송이 나왔고 계단에서 연기가 보였다. 불이 난 곳으로 뛰어가자 먼저 도착한 누군가가 소화기로 불을 끄고 있었다. 다행히 불은 쉽게 잡혔고 선풍기가 있던 벽과 천장 주변에 그을린 흔적만 남았다. 말로만 듣던 분말소화기의 위력을 실제로 보니 뭔가 신기했다. 하지만 그 신기한도 잠시, 나는 분말소화기의 진정한 위력을 눈이 아닌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겨울왕국이 되어버린 교실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으로 만든 왕국이면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으나, 분말소화기가 만든 겨울왕국은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닦아내야 했다.
군대에 간 후 군대와 학교의 공통점을 너무 많이 찾을 수 있어 반가움이 좌뇌를 치고 자괴감이 우뇌를 때려 매일같이 머리가 아팠다. 군인은 전쟁을 대비한 역량을 기르고 기술을 익히는 데 쓰는 시간보다 지금 쓰는 시설물들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교사도 학습이 일어나는 40분 수업을 위해 4년 동안 공부하지만, 막상 학교에 오면 학교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예산으로 해결할 많은 일들을 교사의 직업정신과 사명감으로 메꾸는 전통과 관행을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게 어디 비단 교사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