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적은 간부'
놀토가 있던 시절 근무한 학교는 좋으면서도 이상한 곳이었다. 괜찮은 선임들과 함께 하는 군생활 같은 것이랄까?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란걸, 나는 제대한 뒤 학교에서도 경험했다. 솔직히 이럴 줄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다 좋았다. 학년 부장 선생님이 특히 훌륭하셨다. 훌륭한 부장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업무처리 방법이나 절차, 수업 준비, 학생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법, 교육과정 보는 법, 학급 운영 노하우 등등.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강조하셨는데 다음과 같다. 하나, 수업보다 메신저를 우선하라.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교내 메신저를 쓰고 있었다. 수업을 하다가 알람이 뜨면 일단 내용을 확인하고 바로 답을 보내야 했다. 모름지기 학교라면 수업이 최우선이고, 교사는 준비한 수업을 하고 학생은 즐겁게(?) 수업에 참여하는 곳이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15년 전에는 안 그랬다. (더 슬픈건 지금도 안 그렇다는 사실이다.) 학년에서 각 반별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학년부장이 취합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각 반 학부모회 조직이나 형제 자매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 수, 집에 컴퓨터가 있거나 자기가 셋째인 학생 수 등등 매일 뭔가를 조사해서 보고해도 내일이 되면 새로운 거리가 생겼다.(이 중 상당수가 각종 의원들이 급하게 요구하는 자료들이었다는걸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자료요구에 응답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은 최근이다)
3월에는 이유도 몰랐고 궁금할 틈도 없었다. 벚꽃이 예쁘게 피고 동학년끼리 토요일 오후에 나들이를 나왔을 때 나는 학년부장 선생님께 수업보다 메신저를 우선해야 하는 까닭을 물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내일 모레 월요일 전교사 회의할 때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월요일이 되었다. 업무 담당 교사의 안내들로 시작해서 교감, 교장선생님의 당부(?)말씀으로 끝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회의를 시작하고 안내를 다 들은 뒤 교감선생님 차례가 왔다. 교감선생님 손에는 수첩과 볼펜이 있었고, 그 속에 내가 찾던 답이 있었다. 교감선생님은 3월 한 달 동안 있었던 각종 취합건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몇 학년이 일등으로 보고했는지 공표하기 시작했다. 한 번도 호명받지 못한 학년의 부장선생님 얼굴은 팥죽색으로 변했다. 다행히(?) 내가 속한 학년은 친목회비를 비롯한 몇 건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당시 햇병아리였던 나는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옳지 않은 행위라고 여겼을 뿐. 지금 만약 나에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회의 시간에 대놓고 반박을 하거나, 교무회의 안건으로 올리거나, 학년 부장선생님들과 따로 협의하여 다같이 교장실로 갔을 것이다.
경험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중요하다.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현명함은 경험이 아니라 경험을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오는 것이라고.
아참, 두번째 강조사항은 '학교 일은 학교에서 끝내고 퇴근하라.' 였다. 이는 여전히 내 교직생활의 바로미터로 자리잡고 있으며 꾸준히 실천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