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약 Feb 27. 2022

아프니까 환자다 11 - 잠을 못 자는 그녀

그녀를 보내줘야 할 시간

환자마다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들도 각자의 사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수면제 처방을 꾸준히 받아가는 환자가 있다. 수면제만으로도 모자라 quetiapine 25mg 을 매일 투여한다. 약 없이 잠을 잘 수 없는 사람.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신내림을 받았어요


그녀는 한풀이는 이렇게 시작했다. 여기저기 너무 아파서 병원이란 병원을 다 다녔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노라고. 그녀는 신내림을 받았다고 했다. 그 역시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나이 60을 훌쩍 넘어버린 그녀의 신내림 유효기간은 이미 다 되어버린 것 같았다. 


자신은 이미 퇴물이 되어 버렸고, 그 사이 몸에 찌들은 병은 늘어만 갔다고 하소연을 한다. 이제 수면제 없이는 더 이상 잠을 청할 수 없고, 정신과 진료가 유일한 그녀의 동앗줄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몇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모습을 급작스레 늙은 노파 얼굴로 변했다.


수면제 모자라게 줬자나! 내놔!


  

약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다보면 자연스레 환자와 마지막을 고해야 하는 순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그녀와의 만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정신과 환자들이 약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부터 그 환자와는 마지막으로 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무리 약을 제대로 줘도 의심하기 시작했으니까. 


일종의 정신착란이나 환각 등의 증상이 약국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수면제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어 나가기 때문에, 매일 그 숫자를 세어가며 관리한다. 매일 마감할 때 그 숫자가 정확히 맞아야 한다. 그래서 약이 잘못 나가는 일은 드물다. 이런 약제를 투여하는 환자가 약 숫자가 안 맞다고 하는 순간이 오면, 대부분 환자 증상이 심해졌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녀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싶었다. 이별과정이 조용할 수도, 심한 난동일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 되든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환자 역시 마찬가지다. 약국에서 마주하는 그 환자들. 어쩌면 그들 역시 만남의 과정 중 어디쯤 위치하는지. 제각각의 만남과 헤어짐, 그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또 경험하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프니까 환자다 10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