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험에서 자연재해는 어떻게 담보하고 가격이 결정되는가?
금융은 리스크와 리턴을 교환한다. 다시 말해 예측할 수 없는 일, 불확실한 것에 투자하고 거기서 얻게 되는 이익을 가져가는 게 금융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이다. 그러니 모든 불확실한 것들은 금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불확실한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자연재해'이다. 기후위기가 대두되면서 전에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자연재해가 우리 생활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지금의 자연재해는 과거보다 더 잦고, 더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이 가져다준 한 가지 변화, 금융시스템 하에서 모든 국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자연재해가 우리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나라가 자연재해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라고 해도 먼 나라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로 인한 간접적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졌다. 결국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자체의 심화, 그리고 세계화로 인한 국가 간 연결은 자연재해의 영향을 보다 크고 직접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리스크를 리턴으로 바라보는 금융은 이에 질세라 자연재해와 연관된 금융상품의 규모를 급격히 키우고 있다.
자연재해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금융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리고 모든 금융상품이나 자산에는 적정한 가격, 혹은 조건의 산정이 필요한데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의 가격을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연재해 관련 금융상품은 보험이다. 실제로 풍수해로 인한 재물피해를 담보하는 풍수해보험은 꽤 오랫동안 판매되고 있었고 농가에서 대체로 가입하고 있는 농작물보험도 그 외 원인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도 보상하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수확철을 앞두고 발생하는 가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주로 보상하고 있다. 건물, 농작물뿐 아니라 가장 친숙하게는 올해처럼 여름에 대규모 집중호우가 있을 때 침수로 인한 자동차 피해액을 보상해주는 자동차보험 내 자기차량손해, 줄여서 자차라고 하는 담보도 보상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자연재해를 포함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연재해를 담보하는 보험상품을 많이 가입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가 아닌, 보험사들이 가입하는 재보험으로 가서 바라보면 자연재해를 담보하는 보험은 더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같은 개인이 가입하는 보험은 여러 원인으로 인한 피해를 담보하는 형태가 많고 그중 하나의 원인으로 자연재해를 담보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보험 자차 담보도 일반적인 충돌 사고를 포함해서 여러 원인으로 내 차에 발생한 손해를 보상해주는 담보인데 그중 하나의 원인으로 자연재해가 보상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재보험으로 가면 이렇게 섞여 있는 담보에서 보험사들이 무서워하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만을 쏙 빼내서 새로운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보험사가 '우리 회사에 가입되어 있는 자차 담보 차량에서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을 보상하는 재보험을 다른 재보험사와 계약하는 것이 가능하다. 재보험은 조건이 자유롭기 때문에 재보험금을 산정하는 조건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모든 손해보험사들은 하나로 뭉쳐서 자차 담보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 손해액이 일정 금액을 넘어가게 되면 초과분을 재보험사가 보상하는 형태의 재보험계약에 가입되어 있다. 이때는 각 보험사에 들어오는 자연재해로 인한 자차 보험금을 다 합쳐서 일정 금액을 넘는지를 판단한 뒤 재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올여름 집중호우로 인해 수많은 차량이 침수되었고, 특히 차량가액이 비싼 강남 지역의 차량이 많이 침수되어서 보험사가 막대한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몇몇 기사에서는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재보험계약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재보험계약은 담보 조건이나 보험금 산정 방식이 자유롭기 때문에 자연재해에 관련된 수많은 계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보험계약은 우리가 가진 리스크를 전가받는 일인데 질병으로 인한 보험금 지급이나 자동차 사고로 인한 보험금 지급은 보험사 입장에서 소소한 금액이기 때문에 기꺼이 보험료를 받고 그 리스크를 전가받으려 하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리스크는 싫어할 때가 많다. 자연재해는 일시에 엄청난 보험금 지급사유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대규모 보험금 지급은 아무리 돈이 많은 보험사라고 해도 재무상태를 흔들리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재해 리스크를 가지고 있기 싫은 보험사와 그 리스크를 리턴으로 바라보는 재보험사의 니즈가 맞물려 재보험계약에서 자연재해 담보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서로의 니즈는 충분하니 계약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충분할 텐데 과연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자연재해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보험 담보 중에서도 불확실성이 높은 담보다. 발생 여부만 불확실한 게 아니라 발생했을 때의 손해액은 더더욱 알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보통 보험사들은 보험상품의 가격을 책정할 때 과거 데이터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의료 데이터를 봤을 때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암에 걸릴 확률이 평균적으로 1%이고 암에 걸렸을 때 1,000만 원을 지급한다고 하면 보험료는 둘을 곱한 10만 원이 되는 식이다. 문제는 자연재해는 이런 과거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재보험계약에 영향을 주려면 특정 금액 이상의 손실을 발생시킬 정도의 위력이 있어야 한다. 그 정도의 자연재해는 10년에 한 번, 100년에 한 번, 심지어 지금까지는 발생한 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매년 발생하는 수준의 재해라면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예측되는 일이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굳이 재보험이라는 별도의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개인들로부터 받는 보험료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재보험의 대상은 데이터가 갖춰질 수 없는 수준의 이례적인 자연재해이다. 그렇다 보니 재보험료를 결정하기 위한 기초 데이터는 과거 데이터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고 시장에 오롯이 맡겨서 마치 경매처럼 가격을 책정할 수도 있고 그렇게 정해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매년 재보험자들과 보험자들이 모이는 회의가 열리고 이 회의에서 드러나는 재보험시장의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이 평년보다 높거나 낮은 수준이 될지 알 수 있다. 재보험사들이 자본이 부족해지면 보험사들의 재보험 수요는 많은데 재보험 공급은 줄어들기 때문에 재보험료는 상승하고 반대로 재보험사들의 자본이 풍부해지거나 재보험 수요 자체가 줄어든다면 재보험료는 감소한다. 대체로 요즘은 자연재해 위험이 전보다 점점 더 커지고 더 많은 물건이 보험에 가입되고 있기 때문에 재보험 수요도 늘어나서 재보험시장의 요율은 평년보다 높은 편이다. 이걸 재보험시장이 '하드마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대로 요율이 낮은 시기는 '소프트마켓'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결정하는 부분은 평년보다 높은지 낮은지이니 우리에게는 적어도 기준을 잡아 줄 데이터가 필요하다. 과거 데이터는 알려줄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을까? 바로 '인공 데이터'다. 과거에는 그런 자연재해가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자연과학자들, 컴퓨터 공학자들이 모여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 낸 데이터에서는 우리가 관찰한 적 없는 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가상의 자연재해 데이터를 'CAT Model'이라고 부른다. CAT은 대재해를 뜻하는 Catastrophe의 줄임말이고 금융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연재해를 뜻한다. 인재로 발생한 대규모 손실과 구분하기 위해 Nat-CAT (Natural CAT)과 Man-made CAT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인재로 인한 손실은 별도로 모델링하지 않기 때문에 CAT Model이라고 하면 자연재해 모델을 말한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100년이 채 되지 않고 그 안에도 자연환경이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의 자연재해를 나타내는 데이터는 몇 해를 넘기 어렵다. 10년만 지나도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은 1회당 1년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10,000번, 100,000번의 시뮬레이션도 컴퓨팅 용량만 된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올해의 자연재해 결과를 10,000년, 100,000년을 관찰한 것처럼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정도 시나리오 중에는 10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자연재해도 관찰할 수 있고, 10,000년에 한 번 발생하는 재해도 관찰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통해서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할 손실을 예상해볼 수 있고, 그 예상치는 보험료가 된다.
그러니 사실 재보험사가 재보험금을 계산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 피해액을 알려주는 기초 데이터가 있으면 그 금액의 평균적인 수준, 또 예상치 못한 큰 손실이 발생할 확률 등을 계산해서 리스크에 따른 마진을 더한다. 거기에 시장에서 결정되는 수요와 공급으로 인한 높고 낮음이 더해지면 최종적인 가격이 된다. 다만 자연재해 담보가 다른 점은 그 기초 데이터라는 것이 과거 경험 데이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경험이 아닌 과학자와 공학자들, 그리고 컴퓨터가 한데 모여서 만들어낸 가상의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세부적으로는 달라도 몇 가지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우선 담보 물건을 컴퓨터에 저장한다. A라는 보험사가 재보험에 가입하고 싶다고 하면 A라는 보험사에 가입되어 있는 물건이 된다. 풍수해보험이면 건물이다. 컴퓨터에 각 건물의 위치, 건물가액 등을 잘 저장하면 일단 담보 물건 데이터가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자연재해 데이터를 넣는다. 자연재해 데이터는 보통 지역, 종류로 나눠져서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데이터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지역 태풍 모델'이라고 하면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태풍이 어느 정도의 풍속, 어느 정도의 강우량, 어느 정도의 빈도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CAT Model의 핵심은 이것이다. 여기에 물건과 재해를 연결해주는 함수가 추가된다. Vunerablity Function이라고 부르는데 어느 정도로 물건이 재해에 취약한지를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함수는 물건의 정보와 재해의 정보를 입력값으로 받아서 물건이 피해를 입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출력한다. 마지막으로 물건의 피해 정도를 금액으로 환산해주는 함수가 더해지면 CAT Model의 결과가 만들어진다. 정리하면 물건의 정보, 자연재해 정보, 그 둘을 연결해 물건의 피해 정도를 결정하는 함수, 마지막으로 피해 정도를 돈으로 환산해주는 함수까지가 자연재해 모델을 구성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자연재해 모델을 만들어내는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많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없었던 일을 기후 데이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고 한 번 시장에 자리 잡은 회사가 있다면 다른 회사가 추가로 진입하기 어렵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인공적 데이터를 만든다고 해도 그게 자연재해를 잘 예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먼저 시장에 인공 데이터를 제공한 회사의 값이 표준이 되고 그 값에서 크게 벗어나는 결과를 제공하는 후발 주자는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계에서는 선점 효과가 크게 작용한다. 현재 자연재해 모델을 양분하고 있는 회사, 보통 Vendor 회사라고 부르는데 크게 2곳이 있다. AIR(현재 Verisk)과 RMS이다. AIR은 리스크 관련 데이터 회사인 미국의 Verisk의 자회사가 되었고 RMS는 2021년에 Moody's가 인수했다. 이 두 회사 외에도 RQE라는 모델도 있지만 이미 시장을 양분해서 자연재해의 표준을 정하고 있는 두 회사의 위상을 빼앗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자연재해를 가지고 만들어 낸 금융상품 중 가장 쉽고 직관적인 보험에 대해 알아봤다. 결국 불확실한 세계에서는 표준을 잡는 게 중요하고 자연재해 금융상품의 가격을 산출하기 위한 표준 데이터는 CAT Model을 제공하는 AIR 모델과 RMS 모델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은 보험에만 미치지 않는다.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자연재해와 관련된 금융상품에는 자본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CAT Bond, 대재해채권도 있다. 채권의 가격은 금리로 결정되겠지만 간단히 생각해봤을 때 그 금리를 결정하는 기초가 되는 것 또한 자연재해 데이터이고 이들이 제공하는 CAT Model일 것이다. 결국 모든 금융상품의 가격이나 조건 결정에는 표준이 필요하고, 그 표준은 자연재해 데이터다. 과거 데이터에서는 구할 수 없는 데이터, 물론 인공 데이터라고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시장이 모두 그들을 사용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CAT Model은 자연재해 금융상품 가격의 표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