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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Nov 17. 2023

20231116

상실과의 연결

쿠키가 달리는 게임 같은걸 카페에 앉아서, 담배피우면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꾸준히 하는거. 철권을 하지 않게 된 이 후에, 조용히 아끼는 사람들이랑 떠들썩하게 따뜻했던 가을에서 겨울 넘어가는 사이


이 맘 때 퇴근길은 똑같았다. 핫도그 집을 지나가기 직전까지는 왜 참치캔 만드는 회사 건물이 트리를 닮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생각했고, 수 많은 성형외과를 지나쳐서, 쿠키 집 앞에서는 오늘 일한 일급 전부를 쿠키랑 바꿔버릴까? 쇼윈도 안에 쌓인 쿠키가 다 내꺼였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사먹지는 않았던 가게 앞에서 시끄러운 생각들이 첫 눈 같이 내릴 때 만난 사람.


담배불을 빌리더니 게임하는 폰을 멍하니 보고는, 대뜸 이 집은 피넛버터 쿠키가 맛있다고 먹어봤냐고 물었다. 처음엔 나한테 하는 말인줄 몰랐다. 누군가랑 통화 중이겠거니 했는데, 정적에 정면을 올려다보니까 눈이 마주쳐서, 그 때서야 알았다. 안 먹어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저기 00에서 사냐고 물었다. 살던 말던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고개를 저었다.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여자 맞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당시에는 붙는 옷, 짧은 차림도 일상이었고 화장이 진한 편이었다. 그 날도 여김없었다. 네, 왜 물어보시는데요? 라고 물었다. 무례하다고 느껴졌다기보단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의아했는데 쏘는 것 같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몇 일 전에 아이스크림 가게 골목에서 나 닮은 남자를 봤다고 했다.


잠시 생각했다. 몇 일 전, 서른 몇 가지의 아이스크림가게, 골목. 우리가 헤어지던 날.


 앞머리가 눈가를 가릴 때 까지 자라서 미간에 선명하게 패인 주름까지는 잘 안 보였겠지만, 담뱃불을 튀겨 빼다가 손놀림에 신경질이 잔뜩 묻은건, 어쩔 수 없었다. 불청객이 가까스로 현실 부정 중인 이별을 긁는 것도 모자라 굳이 내 성별까지 물어오며 되짚어지는게 소름끼쳤다.


이 변태는 내가 여자인지 몰라서 물어본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찬 공기가 뺨에 틔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속에서 올라오는 담배 맛은 시고, 가슴이 뛰었다. 토할 것 같았다.


기분 나쁘게 하려던건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이 앞에 OO 다니고, 사실 XX 친구라고. 숨이 턱 막혔다. 사장새끼 친구면, 가게에 왔을지도 모르고, 적어도 내가 일 하는건 안다는 소리였으니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욕도 못 하고, 못 본 걸로 해달라고 할지, 다른 사람인 척 해야할지 말을 못 고르고 있었다. 자기도 쿠키게임 한다면서 캐릭터 모은걸 보여줬다.


말이 많아서 이미 사장님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면 뭐 어쩔껀데 싶으면서도 한 편으론, 혹시, 혹시


작년 이맘 때는 삼겹살 집이었나, 그냥 일일알바를 갔었다. 평소처럼 행동했는데 아저씨랑 얘기했던 테이블에 앉아서 혼자 커피에 쿠키를 먹으면서. 담배 한 대 피우지 않고서 멍하게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잘 모르겠는 매듭만 만지작거리면서.


얘기 좀 하자며 쿠키랑 커피를 마셨다. 자기도 얼마 전에 여자친구한테 차였다고 했다.


내 생각엔 오늘도 저 아저씨는 여자친구가 없을 것 같다. 나도 여자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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