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외계인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앞선 징조들을 보니 그들의 과학 기술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두 개의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 침투하지 못하는 컴퓨터가 없고, 허공에 글씨를 쓰기도 하며, 천제 운행까지 왜곡할 정도입니다. 예상 도착 시기를 계산해 보니 400백 년 후. 오는 것도 확실하고 침공 의사도 명확한데 너무 먼 훗날입니다. 400백 년이라면 조선 왕조 500백 년에서 100년이 빠지는 기간. 자손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의 대에 이르러서야 일어날 일이기에 별 상관이 없다는 지구인도 있고 그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지구인도 있는 이야기. 중국 작가 류츠신의 SF 소설 <삼체>입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동명의 Neflix 드라마가 2004년 개봉했습니다. 먼 미래의 일을 당장의 위협으로 만드는 것은 이들을 신으로 떠받드는 단체의 등장입니다. 외계인이 도착했을 때, 지구의 문명이 앞서 있지 않도록 과학자를 협박해 연구를 중단시키거나 암살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입니다. 대다수의 SF 영화와는 달리 지구의 공권력은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저'의 충실한 조력자 베네딕트 웡이 비밀 수사 기관의 요원으로 앞장섭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모택동의 문화 대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탄탄한 세계관입니다. 홍위병에 의해 인민재판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본 예원제(진 쳉/로잘린드 차오)는 동족에 대한 희망을 잃었습니다. 환경 보호에 심취한 마이크 에번슨(밴 슈네처/조너던 프라이스)은 지구 문명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 이들이 외계인을 지구로 부르게 되고 옥스퍼드 출신의 젊은 과학자 5명이 이에 맞섭니다. 지구 우주선 설계에 나오는 솔라 세일(커다란 돛이 비행체를 이끄는 방식), 계단 프로젝트(우주선 항로에 핵폭탄을 미리 설치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 나노 섬유 기술 등,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개연성 높은 과학 이론이 등장해 호기심을 일으키고 등장 인물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극의 긴장도를 높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것은 항상 걸출한 영웅이나 용감한 군인들이었는데, 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오는 신선한 줄거리의 수작입니다.